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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r427님의 서재
  • [전자책] 트러스트
  • 에르난 디아스
  • 10,710원 (10%590)
  • 2023-03-08
  • : 3,109
아이다 파르텐자는 자신의 일대기를 왜곡했다며 진실이 담긴 전기를 쓰겠다는 앤드루 베벨에게 고용된 대필 작가이다. 해럴드 배너 작가의 ‘채권’이라는 소설에서 앤드루의 아내 밀드레드가 정신병이 있는 여자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내용에 분노하며 밀드레드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하지만, 아이다는 앤드루에게 밀드레드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록 그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 밀드레드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하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한 아이다는 수십년 후 박물관으로 개조된 베벨 저택에서 밀드레드의 일기를 손에 넣게 된다. 일기장에는 투자의 귀재로 알려졌던 앤드루 베벨은 사실 밀드레드의 예측과 투자감각으로 부를 이룬 것이었으며, 밀드레드가 짚어낸 금융 생태계의 허점을 이용해 불경한 부를 쌓았던 것까지 드러나 있었다.

구성은 해럴드 배너의 ‘채권’과 아이다가 대필한 앤드루 베벨의 자서전, 그리고 아이다가 앤드루 베벨에게 고용되며 전기를 대필하던 과정의 회고록, 그리고 마지막으로 앤드루의 실체가 탄로나는 밀드레드의 일기로 이어진다. 사실 아이다의 회고록까지 읽으면서도 앤드루가 막장 소설의 피해자인 줄 알았던 나에게 밀드레드의 일기는 조금 충격적이긴 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진실이 있지만, 그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게 좋을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양심 앞에서, 명예를 잃은 피해자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
어딜 가나 번역이 문제라는 평이 많은데, 역시나 번역이 정말 고통스러운 수준이다. 영문과 출신 번역가인데, 옮긴이의 말도 번역체로 돼 있는 걸 보고 국어 수준이 얼마나 한심스러운지 알 만했다. 구성도 탄탄한 소설인데 새로운 출판사와 번역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면 좋겠다.
무력함은 종종 적의로 변하고,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은 결국 그런 가치 절하를 남 맛으로 돌린다 는 걸 알기에 헬렌은 벤저민의 불안을 해소해주려 최선을 다했다.- P42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P52
1929년 10월 마지막 주, 맨해튼 중심가의 영향력 큰 금융업자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 증권거래소에서 거래하 는 아마추어 주부에 이르는 대부분의 투기꾼들이 오직 자신의 감각과 가차없는 의지 말고는 감사할 대상이 없 는 성공의 주체였다가, 그들의 몰락에 유일한 책임이 있는, 길함이 있는데다 부패하기까지 한 시스템의 피해 자가 되기까지는 단 며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수 하락, 공포라는 전염병, 비관주의에 떠밀리는 매도의 광기, 마진 쿨에 대한 광범위한 응답 불능..... 결국 공황으로 이어진 침체를 일으킨 것이 무엇이든 한 가지만은 분 명했다_버블을 키우는 데 일조했던 사람 중 누구도 그 버블이 꺼진 것에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들은 거의 자연재해와 가까운 규모의 재난을 당한, 아무 죄 없는 사상자였다.- P52
격앙된 연설, 잡지와 신문에 실린 만평(여기에서 벤저민은 대체로 흡혈귀나 독수리, 돼지로 묘사됐다), 그리고 그의 경력에 관해 흐릿하거나 노골적으로 조작한 폭로가 만연했음에도,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이 한 나라의 경제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경제 대부분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희생양을 두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했고, 반쯤 은둔자로 살아가는 괴짜는 그런 목적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아무튼 벤저민 래스크가 직접 위기를 설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계산할 수도 없는 이익을 올렸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로써 그는 전 세계 금융업계에서 신적인 지위에 올라섰다. 새로 얻은 수많은 적들 사이에서도 그랬다.- P53
헬렌의 죽음이 그의 인생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본질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애도는 결혼생활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P82
돈을 준다는 건 힘든 작업이다. 계획과 전략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인도주의는 주는 사람에게도 해가 되고 받는 사람의 버릇도 망친다. 더 자세히. 너그러움은 배은망덕의 어머니다.- P111
우리의 행동은 하나하나 경제의 법칙에 지배된다. 아침에 처음 눈을 뜨는 것은 이익과 휴식을 교환하는 것이 다. 밤에 잠자리에 드는 건 이윤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시간을 포기하고 힘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처럼 하루종일 무수히 많은 교환에 참여한다. 노력을 최소화하고 소득을 높일 방법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사 업적 거래를 하는 셈이다. 상대가 우리 자신이라도 말이다. 이런 협상은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깊이 배어 있어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 존재는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P124
우리 모두는 더 큰 부를 열망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며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다. 자연에서는 아무것도 안정적 이지 않으므로,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을 그냥 간직하기만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다른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우리는 번창하거나 쇠퇴한다. 이것이 살이라는 영역 전체를 다스리는 근본적 법칙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욕망하는 이유는 생존 본능 때문으로- P124
아버지는 가까운 공동체 외부의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어둡고 원한에 찬 섬에 고립되어 있었 다. 자신이 떠나왔으며 적개심을 품고 있는 나라와, 자신을 받아주었으나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은 나라 사이 에 낀 채로- P135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P151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이었다. 똑같은 검은 직모에 똑같은 짙은 갈색 눈, 비등비등한 키와 비슷한 체형. 그들의 얼굴은 얼굴에 대한 동일한 관님을 약간 변주한 것이었다. 내 얼굴이었다. 그들을 봄으로써 나는 나 자신도 바로 그 관님의 한 변주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셋은 동일한 유형의 다양한 구현이었다.- P151
정해진 형태가 없는 미래라는 블록으로부터 현재를 조각해낸다.- P155
너무도 화가 나서 놀란다. 저택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바꿔놓은 건축가들은 원래의 보자르 분위기를 염치없는 현대적 유리상자로 파괴하고, 원래 디자인의 복잡한 과잉을 절제된 직선으로 길들인다는 뻔한 결정을 내렸다.
모든 표지판은 산세리프체로 적혀 있다. 그 시대착오적 간소함으로 불경을 저지르려던 게 틀림없다.- P163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이 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P173
내가 타자로 치는 단어는 늘 과거에 있는 반면, 내가 생각하는 단어는 늘 미래에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는 이 상하게도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간이 되었다.- P191
베벨은 밀드레드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보다 그녀를 완전히 특징 없고 안전한 인물로 바꿔놓는 것을 더 원했 던 것 같다. 베벨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당시에 읽었던 위대한 남자들의 자서전에 나오는 아내들 과 똑같이 말이다.- P197
나는 멈춰 섰다. 그 순간의 경험은 오늘날까지도 내가 증오심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나는 돌아가 테 이블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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