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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표지에 사로잡혀 서평단에 신청해서 받은 소설이다.
잔뜩 기대하고 첫장 페이지를 겨우 넘겼다가 계속 읽지 못하고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첫 페이지의 등장인물의 대화 내용이 하필이면 '이혼'이었기 때문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주제, 피하고 싶어서 미루고 미룬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 싶었다.
그 책을 오늘 다시 용기내어 펼치게 되었다.
무심코 읽기 시작한 나는 결국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어버렸다.
와... 이거 뭐지? 이토록 흡입력 있는 문체라니 정말 간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나의 옹졸한 편견과 빈곤한 상상력으로 인해 묻혀버릴 뻔한 '내일의 어제'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각자 꿈꿔온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의 모습들이 있기 마련이다.
<선우>
선우는 초반에 등장해서 이혼을 결심하고 떠나는 과정에서 친구 정민과 크게 싸운다.
그리고 자신이 키우던 로봇 강아지 모모를 정민에게 주고 미국으로 떠난다.
사실 선우의 이혼 스토리는 주변에서 늘 듣고 보던 거라 너무 흔해서 내겐 지루하게 느껴졌다.
사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했던 부분이지만 난 이걸로 인해 책 읽기를 멈췄으니 나와 같은 독자가 또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
조금만 견디고 읽으면 이 부분이 지나면 꽤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정민>
방송 작가 정민은 하늘과 스무 살 때부터 친구로 시작해서 결혼하여 무탈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즐거운 친구이자 부부로서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 늘 그곳에 한결 같이 있는 존재.
어쩌면 대부분의 연인들이 원하는 그런 결혼 생활일지도 모른다.
<민주>
민주는 기상캐스터로 아름다운 여자이며 사업가인 남편과 함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하며 살아간다.
평상시 그들의 대화는 존칭을 사용하며 서로에게 훌륭한 비지니스 파트너의 모습이다.
흠잡을 데 없는 서로의 사업을 공유하는 관계. 남부러운 삶을 사는 부부.
그런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 외로움을 안고 있다.
숨 막힐 거 같은 외로움. 조용하게 살아가는 정민과 화려하게 살아가는 민주 모두 각자의 외로움을 끌어 안고 살아간다.
그것은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답답한 비밀인 것이다.
정민은 어릴 때 친구로 만난 하늘과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하게되었지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임신과 유산을 경험한 뒤 삶에 균열이 생긴다.
아기를 유산한 뒤 힘겨운 나날을 보낸 정민의 삶의 흔적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정민은 꽤 오랫동안 기쁨과 슬픔이 고장 난 시간을 보냈다.
(84쪽)
총알 없이 총을 겨누는 건 정말 범죄가 아닐까.
죽일 의도가 없었던 사람은 정말 용서받아도 될까.
이런 궁금증에 정민은 세상과 천천히 두텁게멀어져 갔다.
(85쪽)
정민과 결혼하고 하늘은 정민에게 매일매일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질문없는 불편한 대답을 들으며 사는 기분이었다.
사랑을 바라는 일은 마치 마음을 구걸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난 이제 남들처럼 살고 싶어. 남들 속도에 맞춰서 세상만큼 넓어지면서 살고 싶다고.
내가 세상에 섞이려면 네가 없어야 해. 네가 내 옆에 있으면 난 널 벗어날 수가 없어."
(305쪽)
이처럼 동상이몽으로 살아가는 각각의 커플들을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것 같던 정민이의 결혼 생활은 숨이 막혔고,
겉으로는 화려하고 완벽한 것 같은 민주의 결혼 생활 역시 쇼윈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의 균열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것이다.
마지막 등장한 선우의 두 번째 결혼식은 진지함은 집어 던지고 EDM 음악과 함께 굉장히 흥겹다.
결국 사랑이란 무엇일까?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결혼 생활, 비지니스 파트너처럼 서로에게 의무감으로 유지하는 삶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나요? 그래서, 행복한가요?"
*이 글은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 서평단을 통해 모모북스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총알 없이 총을 겨누는 건 정말 범죄가 아닐까.
죽일 의도가 없었던 사람은 정말 용서받아도 될까.
이런 궁금증에 정민은 세상과 천천히 두텁게멀어져 갔다. - P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