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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나~
  • 오디세이
  • 호메로스
  • 17,010원 (10%940)
  • 2026-08-25
  • : 225


전 세계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지중해의 뜨거운 열풍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메로스의 대서사가 거의 3,00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왜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한 것일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내재적 불안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불확실한 미래, 현실의 고민, 타인의 시선이 언제나 자신을 억누르고 가로막는다. 오히려 자신을 보호해줄 신의 구원이 훨씬 가깝고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호메로스는 제우스와 아테나를 인간세계로 데려와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로 현인하며 삶의 당위성과 정의의 기준을 내재화한다. 오디세우스는 영웅의 모험담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내면적 갈등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처절한 논증에 가깝다.

 

오디세우스가 존재하지 않는 이타카, 수많은 구혼자들이 무위도식하며 텔레마코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 텔레마코스는 태어나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트로이로 떠난 병사들이 속속 돌아왔지만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한 구혼자들의 끝없는 구걸행위가 텔레마코스를 괴롭혔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치욕스러웠다. 어렸고 무시당했다. 수세기동안 그리스인들을 괴롭혔던 신들은 마음이 동했다. 제우스는 아테나를 부르며 새판을 짜기 시작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 친구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에 접근했다. 필로스의 네스토로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에게 가서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찾아 나서라고 조언한다. 아테나의 말에 용기를 얻은 텔레마코스는 포도주와 음식을 싣고 필로스로 향한다.

 

그리스에선 낯선 손님을 보호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환대(xenia)를 신성의 의무로 여겼다. 나그네와 손님은 제우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필로스에 도착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영웅담을 듣지만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국가를 전전하며 재산을 모았던 메넬라오스가 오디세우스를 회상하며 프로테우스의 이야기를 꺼낸다. 프로테우스는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저주에 갇혀 님프 칼립소의 집에 붙잡혀 있다고 언급한다. 한편 이타카에 남아있던 탐욕자들은 텔레마코스가 아버지 소식을 듣기위해 필로스로 떠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늦게 아들이 떠난 소식을 전해들은 페놀로페는 이제 아들까지 잃게 됐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제우스의 명을 받은 헤르메스는 빛나는 신을 신고 칼립소에 날아간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명을 전하며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라 명한다. 아름다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을 제시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바닷가에 앉아 고향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제우스의 명령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도움으로 뗏목을 만들어 넘치는 파도위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여전히 오디세우스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를 오랫동안 바다의 고통에 묶어놓았다. 그의 고난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질투를 받는 인간이었다. 뛰어난 지략과 용모, 위기를 헤치는 용기, 신은 오디세우스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형벌과 고통이라는 가혹한 운명을 거두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가 도착한 곳은 파이아케스라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는 섬이었다.

 

아테나의 도움으로 파이아케스에 도착한 오디세우스, 그는 왕과 왕비의 호의에 힘입어 몸을 추스르고 그간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테, 죽은 자들의 세계, 쎄이렌과 스킬라,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짓눌렀던 시간을 회상하며 크나큰 상실과 절망에 빠진다. 같이 떠났던 동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의 주변엔 낯선 문명과 기억하기 싫은 수많은 고통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심해질수록 그의 내면 안에선 더욱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나야 했다. 또한 무너진 자신의 영예와 영광을 복구해야했다. 그가 고향을 떠난 지 스무 해, 이타카에 도착했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려했을까? 인생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하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불확실한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강구해왔다. 천문, 점성술, 신화, 종교, 그리고 다양한 문명의 진화까지, 삶의 반경이 확장될수록 불확실성은 커져갔다. 십년간의 전쟁, 끝없는 삶의 고통, 호메로스는 이 모든 것을 신들의 시기와 질투로 묘사한다. 개인의 인생을 신들이 좌우하고 있다면 그들에 충성을 바치면 나쁜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면 신에 불충했기 때문이다.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아 동료들이 죽임을 당했고 포세이돈의 미움을 사 절멸했다. 하지만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위해 텔레마코스를 설득하고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위로했다. 인간을 형상화한 신, 신에 위탁한 인간의 삶, 어쩌면 인간은 가장 나약한 종에 불과할지 모른다. 대다수 오디세우스의 평론은 방황은 할 수 있지만 목적지는 잃지마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다. 하지만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다. 때론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만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곳, 자신이 묻혀야 하는 곳,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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