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전철을 타고 기계적인 일을 반복한다. 간혹 감정을 동요할만한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큰 틀에선 특별한 의미가 없다. 오히려 자신에 둔감해질수록 타인의 시선에 눈길이 집중된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최소한의 물음마저도 누군가의 인정욕구에 시달린다. 나는 누구인가? 왜 독립적 개체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가? 존엄은 자신이 스스로를 증명할 때 가능하다. 현대사회의 존엄은 철저히 타인 의존적이자 상대적이며 대상주의다. 그리고 그 대상은 권력, 자본, 소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존엄이 무너진 자리는 공허하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당신에게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은 알아서 돌아간다. 누구의 의지도 반영되지 않는다. 강한 권력자들의 생각이 현실화되는 이유는 그들의 의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런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의도는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맞다. 세상은 그 누구에게도 이럴 것이란 정답이나 확신을 준 적이 없다. 나약한 인간이 스스로에 부여한 자기신념에 불과하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도한 신념, 누군가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믿음을 통해 문명을 번영시켰다. 유발 하라리의 개념은 구체적이고 현실화되었다. 상상의 영역이 문명을 이루었듯이 국가나 종교와 같은 심리기제역시 상상의 영역을 더욱 곤고하고 있다. 우린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그리고 삶의 몫은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세상은 움직인다.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 변화는 일상적이나 실체적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자만이 세상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이방인, 카뮈가 선택한 삶의 질곡이다. 그는 왜 아웃사이더 인생을 선택했을까? 그는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려했을까? 청각 장애인 엄마. 고통스러운 결핵, 샤르트르등 절친의 배신, 그는 생애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수많은 질문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모든 일엔 누구의 의도도 의지도 포함되지 않았다. 세상은 친절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았다. 세상은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 절망하거나 회피하는 것을 선택한다. 삶의 몫을 자신이 아닌 사회나 타인에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카뮈는 세상의 진통제를 거부했다. 가난 속에서 침묵했고 응답하지 않는 세계를 응시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숨겨진 삶의 위대함을 깨달은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는 마치 끝없는 형벌을 반복하는 인간의 군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정하고 과정의 고통을 미화하는 형벌신화가 아니다. 시지프는 결과를 미리 떠올리지 않았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할 고통을 남겨두지도 않았다. 오직 내려가야 할 때를 알았고 올라감으로 자신에 주어진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삶의 일부이자 연속성이다. 우린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세상이 발전할수록 결과의 성패가 삶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결과는 끝없는 과정의 일부이자 또 다른 결과로 대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삶은 오직 지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세상이 만든 정답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어느 순간 정답이라 여겨졌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보상과 세상이 주는 의미는 오히려 순간에 불과하다.
부조리는 카뮈가 일생을 통해 증명한 명제다. 응답하지 않는 세계에 기댈 필요가 있겠는가? 응답하지 않으면 응답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는 허무주의자는 아니었다. 현실을 회피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실을 응시하고 스스로에게 강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세상이 만든 정답을 과감히 거부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도화지위에 자신의 필체로 삶을 새겨나갔다. 누구도 그의 삶에 위로나 위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자기만의 서사를 매일 기록했다. 부조리에 맞설 가장 심오한 철학은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세상은 무수한 환상을 심어준다. 환상은 마치 자신이 뭔가를 이룰 것 같은 기분을 전달한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환상이라는 희망을 버릴 때 비로소 시작된다. 미래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조차 묵직한 어깨의 짓눌림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본 책은 성실한 당신이 세상에 철저히 배신당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노력하면 보상받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보상받지 않는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병에 걸린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 실패한 사람은 절실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즉 세계의 침묵은 개인의 부족으로 번역된다. 치환은 잔인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폭력적인 치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카뮈의 선택은 분명하다. 타인의 기대, 내일의 희망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오늘의 내가 선명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짜 나를 대면하는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가장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진짜 나의 삶이 시작된다. 세상은 어떤 응답도 정답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바라본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카뮈의 선택은 똑 같은 일상이었다. 그 누구보다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인지했던 카뮈, 그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자 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