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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나~
  • 가장 위대한 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쟁취된다
  • 애덤 스미스
  • 16,020원 (10%890)
  • 2026-07-06
  • : 630


탐욕과 공포의 경계는 어디일까? 한국주식시장이 도박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단지 단일종목 레버리지의 과도한 변동폭 때문일까? 아이러니한 것은 변동폭이 커질수록 돈의 움직임도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26년 상반기 한국주식시장은 유례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수조원의 자금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투기판은 외국자본이 만들어놓았던 것은 아닐까? 탐욕은 인간의 정당한 욕구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돈을 벌기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패를 사용한다. 주식시장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본시장에서 도덕을 찾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앞서 도덕감정론을 통해 공명정대한 관찰자 이론을 제시했다. 위선이 만연한 구조에서 타인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는 결코 도덕적 승인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위선이고 무엇이 정당성일까?

 

애덤 스미스, 이름만으로 경제학을 상징한다.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난립했지만 스미스의 경제학 원론을 뛰어넘지 못했다. 스미스는 자본시장과 인간관계를 꿰뚫어본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이기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도덕 감정론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도 제시했다. 스미스는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힘을 시장이나 경쟁이 아닌 공감이라고 보았다. 도덕 감정론은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스스로를 평가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말한다. 이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분히 주체적이다. 하지만 스미스가 자본시장에 도덕을 앞세웠던 이유는 자본시장이 확산될수록 누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될지 예측했기 때문이다. 중상주의가 활개 하던 시대. 누구보다 먼저 자본주의 시대를 예견하고 이를 통합했던 스미스의 통찰력은 오히려 21세기에 더욱 강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인간본성은 250년 동안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250년이 아니라 태초 이래 변한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공포를 두려워하고 항시 불안하며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옭아매며 손실을 회피하는 신념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인간의 심리를 가장 농밀하고 세밀하게 드러낸다. 자본주의는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스미스는 사회구조, 특히 금융이나 경제를 통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했다. 빵집 주인은 선의나 자비를 위해 빵을 제공하지 않는다.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빵을 굽는다. 이익주체가 선의를 포장한다면 시장은 이익주체에 의해 좌우되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많은 사람은 선의라는 포장으로 자신의 이익을 숨긴다. 스미스의 해법은 상공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봉건영주들의 자비보다 상공업자들의 정당한 교환이 인간을 예속에서 해방시킨다고 보았다.

 

교환은 시장거래의 핵심이다. 교환이 가능한 물건이어야 정당한 가격을 치룰 수 있다. 또한 상호이득이 전제되어야 한다. 강요된 호의나 희생은 오히려 피해자를 양산한다. 스미스의 덕 감정론은 개인에 한정되어있다. 사회는 개인을 구속할 수 없다. 거래가 곧 관계다. 거래를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이기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교환의 바탕에 깔린 이기심을 인간 본성에 내재된 중력과도 같은 보편적 법칙으로 보았다. 자비는 변덕이 심하고 일회적이다. 또한 개인의 성격이나 감정에 의해 쉽게 변한다. 하지만 이기심은 항구적이다. 이기심이란 본성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서로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지, 가장 솔직하게 답변한다.

 

노동과 노력, 사회구조를 상징하는 단어다. 대부분 노력한 만큼 보상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시장은 당신의 노동이나 노력보다 당신이 내 놓은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가, 아닌가로 판단된다. 사람을 가격으로 환산하는 시대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노동의 가치도 변화했다. 지금 자신의 생각과 하는 일이 가치를 전달 할 수 없다면 자기만족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의미의 성장은 제로에 가깝다. 스미스는 오히려 이런 구조가 훨씬 평등하다고 강조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스미스의 의도대로만 확장된 것은 아니었다. 자본은 물과 같다.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분업을 통한 기회균등은 새로운 악습을 탄생시켰고 노동 가치를 폄훼했다. 거대기업의 등장과 1인가구의 확산은 노동 가치를 재정의하며 독점시대가 열린 것이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보수경제학자들에 의해 시장을 완화하는 특별한 처방책으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스미스 이후 인류는 수많은 부침을 겪었다. 대부분 무분별한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었다. 거래가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예기치 않았던 사건들이 발생한다. 문제는 빵집의 파산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좋은 궁합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림자 또한 만만치 않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거대한 흑막으로 자본시장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았던 자본주의는 인류를 거대한 문명으로 이끌었다. 인류는 자본주의와 함께 흘러가고 있다. 간혹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구조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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