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보기조차 쉽지 않지만 필름카메라 하나들고 여행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처음엔 필름을 넣는 방법도, 초점 맞추는 것도 서툴렀지만 카메라를 어깨에 메는 것만으로도 낭만을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득히 오래된 것 같은데 불과 몇 십년전의 일입니다. 당시엔 몇 통 안 되는 필름 아끼기 위해 구상을 먼저 했습니다. 어떤 포즈가 잘 나올지, 어떻게 구도를 잡을지. 덕분에 한 장을 찍을 때마다 정성을 가득 담았습니다. 찍은 필름을 들고 현상소를 방문합니다. 이제 사진 나오는 날만 기다립니다. 사진에 이토록 강렬한 기억이 남아있을줄 미처 몰랐습니다. 사진의 재현성이 과거를 떠올리고 시간성이 추억을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진은 과거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추억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AI는 빠른 속도로 인간의 범주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아날로그를 해체하고 디지털을 무력화시키며 새로운 이미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한 이미지 생산은 놀라울 정도의 정밀함과 세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젠 직접 찍은 사진과 AI를 이용한 이미지와의 구분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AI의 합성 이미지가 인간의 시간과 감성을 나타낼 순 없습니다. 디지털화 될 수 있지만 사진은 인문학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피사체와 사진가, 관람자의 동선이 교차되며 서로의 경험과 감정에 의해 연결되어있습니다. 사진은 작가의 기록이고 감정을 일으키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공유되는 경험입니다. 오래된 사진을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훌쩍 지나버린 수많은 시간이 안타깝고 아쉬워 깊은 상념에 잠겨있지는 않은지요?
포토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는 AI시대의 사진을 통해 좋은 사진에 대한 주관적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9세기 사진은 초상화를 대체할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과 제국주의의 확산이 펼쳐지면서 객관적인 시각기록장치가 필요했습니다. 표현의 재현력과 회화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원초적 욕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프랑스의 다게르와 영국의 탈보트는 서로를 견제하며 뛰어나 사진술을 발전시킵니다. 사진을 찍고, 보존하고, 공유하는 일이 점점 쉽게 되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드디어 나의 기록이 능동적 화자가 되어 스스로 원하는 서사의 틀 안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시대가 열립니다. 나의 모습을 남기고, 내가 본 세상을 기록하고, 내가 본 세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AI시대가 오면 사진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을까요? 사진작가인 저자의 고민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나타납니다. 인간의 감성과 경험에만 의존하기엔 너무 큰 불확실성이 다가올 것이라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시각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우리의 내적인 감성을 크게 자극합니다. 자신의 시간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성, 재현성, 시간성이 사진이 주는 감성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화질과 섬세한 그래픽으로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개인의 경험과 감성을 나타내기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진의 기록성엔 잊힌 기억을 바로잡는 놀라운 회복효과가 있습니다. 반면에 AI는 가짜사진을 만들어 기억을 속이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디지털화는 시각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회화, 사진, 동영상, 홀로그램 그리고 가상현실까지, 특히 SNS는 이미지화의 집합체로 수많은 개인들의 경험이 축적되는 공간입니다. 사진의 개인화가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진은 본래의 모습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본 책은 AI시대의 사진의 효용성과 필요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사진의 역사를 통해 사진이 인간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고 문화를 만들어왔는지를 추적합니다. 사진이 주는 미학은 결정적인 순간에 대한 반응입니다. 저자는 브레송의 계단을 오르는 소녀를 통해 결정적 순간이 지닌 미학의 결정체를 소개합니다. ‘사진가는 끊임없이 사라져가는 것을 다룬다. 그것들은 한번 사라지고 나면 세상의 어떤 장치나 인위적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우린 결정적인 삶의 순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현실의 고민과 미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마주하는 것, 풋풋하고 싱그러운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울림이자 메시지입니다. 본 책엔 사진의 과거, 현재, 미래가 펼쳐져 있습니다. 또한 사진을 잘 찍는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습니다. 사진은 이미 삶을 이해하고, 기억을 구축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젠 누구나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사진 찍기는 영원히 멈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