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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의나날님의 서재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 은희경
  • 13,500원 (10%750)
  • 1999-04-10
  • : 956

멍의 기억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중에서
아무튼 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살아 있는 편이 천배는 더 좋겠지만 죽어버렸으니 어떡해, 그냥 죽은 너를 사랑할수밖에. 네가 죽었다고 해서 갑자기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될 리도 없잖아. 이미 생겨난 것인데 그 사랑이 어디로 사라지겠어. 어릴 때 난로 위의 주전자를 한나절씩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는 말을 너한테 했 던가? 기운차게 치솟던 하얀 김이 점점 흩어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서운했어. 어디로 간 걸까.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않을 뿐 여전히 공기 중에 다른 형태로 떠 있다는 사실을 자연시간에 배우고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 죽음이란 삶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니야. 죽은 너를 사랑하는일이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를 잊는 일이야. 너를 잊게 되면 사랑을 잃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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