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미열의나날님의 서재
  •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13,050원 (10%720)
  • 2017-06-28
  • : 42,964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타임라인은 문문의 비행운이란 노래가사 부터 시작이었는데,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또 한명의 작가를 좋아하게 됐어. 사실 비행운 읽고는 와 이 작가 책을 몇번이나 덮었는지..
한 이야기가 정말 안읽히고 힘들어서 포기할까 했었는데, 이 책 읽고는 내 편식 탓이구나라는 걸 알게됐어. 이건 내가 그 책 중에 좋아한 이야기의 일부,
- 아빠랑 왜 헤어졌어?

새삼스런 질문에 당황하지 않으려 천천히 고개를 든다.

… 전에 말해줬잖아.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

재이가 내 앞에서 짐짓 어른인 척 사회적인 표정을 짓는다. 마치 자신이 사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듯.

- 나 때문이야?

아니라고 몇 번 말해.

-그럼 왜……?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말해줘. 생일 선물로,

… 말해달라니. 막막해서 도리어 웃음이 난다. 이걸 어찌 설명하나, 말한다고 네가 알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재이야, 어른들은 잘 헤어지지 않아. 서로 포개질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게 반드시 이별을 의미하지도 않고, 그건 타협이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예의랄까, 겸손의 한 방식이니까. 그래도 어떤 인간들은 결국 헤어지지. 누가 꼭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해, 서로 고유한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안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수 없는 거야. 

맹렬한 속도로 지구를 비꺼기는 행성처럼, 수학적 원리에 의해 어마어마한 잠재적 사건 두 개가 스치는 거지, 웅장하고 고유하게 휙 어느 땐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것로 강렬하고 빠른 속도로 휙. 그렇지만 각자 내부에 무언가가 타서 없어졌다는 건 알아. 스쳤지만 탄 거야. 스치느라고, 부딪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지나치면서 연소된 거지. 어른이란 몸에 그런그을음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구나. 그 검댕이 자기 내부에 자신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암호를 남긴, 상대가 한 말이 아닌,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의문과 경외를 동시에 갖는, 그런데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그래, 엄마랑 아빠는…… 지쳐 있었어.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 자리에 누울 땐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돼 있거든. .…… 그런 걸 다 설명하진 않는다. 대신 이 곤경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다 온전한 참도거짓도 아닌 말을 던진다.

아빠랑 왜 헤어졌냐고? 웅음…… 생각이 달라서?

재이가 뜻밖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곤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말을 훈계조로 이야기한다.
-그럼 토론했어야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슴을 크게 부풀리다 가라앉히며 숨쉬는 걸 처음 배운 아이자세다. 그렇게 ‘댄과 수연 언니가 없는 댄과 수연 언니의 집‘에 시서히 적응해갔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혼자라는 느낌은 덜했다.
남편을 잃기 전, 나는 내가 집에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잘 몰랐다.
같이 사는 사람의 기척과 섞여 의식하지 못했는데, 남편이 세상을 뜬 뒤 내가 끄는 발 소리, 내가 쓰는 물 소리, 내가 닫는 문 소리가 크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두 사람만 쓰던, 두 사람이 만든 유행어, 맞장구의 패턴, 침대 속 밀담과 험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던 잔소리, 농담과 다독임이 온종일 집안을떠다녔다. 유리벽에 대가리를 박고 죽는 새처럼 번번이 당신의 부재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때야 나는 바보같이 ‘아, 그 사람, 이게 여기 없지……..‘라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깨달았다.
드문드문 솟은 풍력발전기를 보자 평화로운 해양성 기후‘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이 섬나라 하늘이 언젠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본 하늘, 전쟁에 지친 병사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며 회상한 풍경과 닮아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앞의 ‘청명‘이 남의 집에서 떼다 붙인 커튼처럼 느껴졌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고,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한데, 뭐가 됐든내 것 같진 않았다.
모교에서 첫 강의를 트고‘, 이 고장 저 고장으로 강의를 나가기시작했을 때,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학점 관리와 아르바이트, 취업 준비로 고등학생들보다 더지쳐 있었다. 물론 나도 초보 강사 시절의 의욕과 기대를 많이 있었다. 강의 후 실수를 복기하며 며칠씩 후회하는 일도 줄고, 강의실서 마저 못한 말을 중얼대다 잠자리서 아내를 놀라게 하는 일도드물어졌다. 학생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뒤, 그저 성실한 강사이면 될 것을 오늘 나는 왜 선생‘이려고까지 했을까 후회하는 일은 여전하지만, 졸거나 스마트폰 만지는 학생을 적당히 모른 척하고, 무례한 질문에 놀라지 않으며, 관계보다 실무에 더 신경쓰는사람이 됐다. 어쩌면 프로야구 선수, 프로골퍼 할 때 ‘프로‘ 강사에 가까워졌다 할까. 그런 내게 최근 프로 강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앉을 기회가 왔다.

몰라도, 같은 척이라도 내가 하는 거랑 다르다니까. 술자리서 교수들이 떠들 때 나는 느슨하게 들어요. 음, 저 말은 지루하군. 음,
저 얘기는 건질 만하네. 골라가며 듣는다고. 근데 애들은 안 그래.
똑같이 지루한 얘길 들어도 더 열심히 지겨워하고 더 열심히 저항한단 말이야. 너무 가만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소극적인 추임새를넣었다.

-그렇죠.

그죠? 그게 젊음이지.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안 그래요, 이선생?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 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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