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공히 동양과 서양은 두 거대 제국의 유산을 밑거름 삼아 동시대에 르네상스를 구현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마치 유럽이 이념적으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부활시키고자 했으나 실제 과학적 유산들은 이단시했던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명과 조선 역시 이념적으로는 자국 중심의 중화中華(문화) 회복을 전제로 내세웠지만 오랑캐로 멸시하던 몽골의 유산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족漢族의 경학으로 새롭게 이름 붙이고자 했던 『사서오경대전』 역시 상당 부분 원대 주석학의 업적이었다. 이처럼 현실적 수용과는 달리 이념적으로는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하기 위한 사상적 무장과 재편이 필요했으며, 이에 따라 전통에 대한 재인식과 대대적인 문물제도 정비가 이루어졌다.- P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