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 가운데서 동갑내기를 찾아 연대를 외우면 쉽게 기억된다. 이승만, 토마스 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적어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라 하면 대답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1875년생 동갑내기다. 그들이 정확히 동년배이며 동시대를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 이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릴케가 토마스 만보다 옛사람일 거란 막연한 생각이 깨어지는 것은 내게 흥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승만을 떠올리면 우리가 한참 뒤늦은 나라에 살았다는 것이 실감된다. 세 사람 중 정치가가 가장 오래 살고 시인이 제일 먼저 갔다는 사실도 그럴듯하다.- P57
헤르만 헤세는 이들보다 두 살 아래다.
세상에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은 동갑내기도 있다.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가 그런 경우다. 세계의 변혁을 추구한 혁명가와 평생 급진적 변화에 대한 유보감을 표명한 작가가 동갑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3·1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9년이지만 두 사람은 1818년에 태어나 1883년에 세상을 떴다. 즉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바로 한 해 전에 간 것이다. 연대를 알고 기억한다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 아님을 실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독자의 자유요 타인이 간여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1616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떴다는 것을 알면 그들의 시대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