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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삼촌님의 서재
  •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 배명훈
  • 9,900원 (10%550)
  • 2011-04-27
  • : 297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조카가 물었다.
"삼촌, 물건에서 왜 끼익끼익 소리가 나는지 알아?"
"뭐라고?"
"그건, 물건이 아프니까 보호해달라고 외치는 거야. 끼익끼익들이."
 
무슨 소리인가 했다.
조카는 끼익끼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또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리고는 책가방에서 보물이라도 꺼내는 양, 노란색 책 한 권을 꺼냈다.
 
<끼익끼익의 아주 중대한 임무> 제목이 독특하게 눈에 띄는, 딱 봐도 뭔가 상서롭지 않은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물건이었다.
 
조카는, 마치 자기에게 아주 중대한 임무라도 되는 듯이 제법 비장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끼익끼익은 도시에 사는 요정이야. 기차 연결 고리나 선풍기, 문 같은데 살거든. 삼촌 허리띠에도 있잖아."
군대에서부터 쓰던 군용 허리띠를 찰 때마다 끼긱 소리가 났었다.
 
"얘네들은 자동차, 엘리베이터, 집을 대신해서 막 소리를 질러. 얘네들이 물건을 대신해서 말야.
 물건들은 소리를 못내니까."
 
조카는 책을 넘기다가 갑자기 종이가 까맣게 바뀐 페이지에서 멈췄다.
"근데, 삼촌은 끼익끼익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조용해지겠지."
"조용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
 
답할 말이 없었다. 누가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애에게서 이런 질문을 들을 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조카의 눈에는 전에는 못 봤던 반짝거림이 있었다. 조카를 실망시킬 수 없었다.
"삼촌도 그 책 보고 얘기하면 어때?"
 
조카는 망설이듯, 소중하게 책을 가슴에 안았다가는.
"삼촌이니까. 빌려주는 거야."
 
그리고 약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읽었다.
끼익끼익들이 사라지고, 인류 역사상 가장 조용한 며칠이 흘렀다. 아무도 소리 질러 주지 않으면 뭐가 얼마나 잘못 됐는지
알 수 없으니까 물건들은 갑자기 툭 부러졌다. 건물 벽이 갈라지고 다리가 휘어지고 자동차가 멈췄다.
 
도대체 왜 끼익끼익들이 사라졌을까.
내가 정신없이 책 속에 빠져 있는 동안, 조카는 가끔씩 내가 잘 읽고 있는지 보러 왔다.
마지막 장을 다 넘겼을 때, 조카가 물었다.
 
"삼촌은 끼익끼익 중에 누가 제일 좋아?"
"음.. 사브낙사브낙이 좋네."
"난 더름더름이랑, 히나히나랑 태양의 끼익끼익이 좋아. 근데 삼촌 내가 젤 좋아하는 끼익끼익은 이거야."
조카는 입에 얼음을 물고 와서는 와드득 깨물었다.
"얼음 속에 있는 와드득은 내 머리 속을 시원하게 해주거든. 근데 삼촌 얼음을 먹으면 와드득은 죽는 거야?"
"아니, 소라 네 머리 속에서 얼음을 먹을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내주지 않을까."
"내가 자고 있을 때 무서운 꿈 꾸면 내 대신 소리 질러 주면 좋겠다."
 
조카랑 이렇게 오래 얘기해 본 게 참 오랜만이었다.
조카는 자기에게는 와드득이 있어서 자고 있어도 자기 대신 소리를 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이쁜 상상력을 이쁜 말로 하는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끼익끼익 소리가 왜 나는지, 아이들은 항상 궁금해 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어른들에게, 아주 근사한 대답을 아니,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만드는 책.
제대로 얘기를 못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이 끼익끼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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