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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팜과루디
  • 선의 법칙
  • 편혜영
  • 10,800원 (10%600)
  • 2015-06-15
  • : 1,596

 

방금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지금 좀, 아니 몹시 당황하고 있는 중이다. 이건 편혜영의 소설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이질적이지? 파국을 향해 치닫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 그 파국에 대한 간단한 진단과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건조한 문체 모두 편혜영의 것이 분명한데, 뭔가 이질적이다. 윤세오를 구제하고, 수퍼마켓 대안 공동체를 조성하고, 신기정과 엄마가 화해하고 뭐 이런 것도 이질적이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 소설은 뭔가 이질적이다. 수다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소심해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 같으면 검객이 대나무 잘라내듯 팍팍 치고 나갔을 부분에서 미적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닌데, 편혜영이 이러니 좀 당황스럽다. 지금 느낌은 확실히 당황스러움이다. 그러니까 인물의 내면이 너무 복잡하고, 그러다보니 모호해지고, 결국은 모두 비슷해져버렸다. 한 번 더, 그러니까 인물들이 진짜 인간처럼 보이게 되었다는 거다. 예전 편혜영 소설의 인물은 인간은 인간이되 종이로 만든 인간이었다. 평면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뭔가 회화적인 느낌을 주는, 단면을 잘라낸 인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잘라낸 인간이 얼마나 낯설고 강렬했었는지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이 소설은 도대체 뭔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인간을 재현하는 것이 소설인가? 아 물론 그런 소설도 있겠지만 적어도 편혜영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왜 이러는거지? 지금 여기다 편혜영을 걱정하는 내용을 마구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러다가 편혜영이 김애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편혜영을 걱정하다 편혜영 소설을 읽지 않게 될까봐 걱정된다. 그 외에도 걱정되는 것이 많고 짐작되는 것도 많고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걱정도 있는데 이게 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누군가 설명해주면 좋겠다. 인간 편혜영이 좋은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소설가 편혜영은 계속  독한 사람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아 이거 좀 오덕 같긴 한데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뭐 내가 이런다고 한 번 강을 건넌 사람이 다시 돌아올 리도 없고 괜한 소리라는 것도 아는데, 적어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쓰는 동안 강을 건넌 사람은 어쩌면 편혜영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다 읽었는데 당황스러움만 남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강에 발을 들여 놓은 거지. 그러나 아직 건너가진 않을 거다. 돌아와요 편혜영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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