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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은 초등학교 때 하는 것인데(반공교육에서 배운다), 국가가 먹고 살 방법을 다 살펴주면 국민들은 안심하고 자신의 재능과 특기를 잘 발휘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일이 전혀 영리추구와는 거리가 멀다면, 영역을 좁혀서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영리추구라는 목적을 박탈하면(해방시켜주면) 그의 생산력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범위를 좁혀서 여기 소설가 한 명이 있다고 하자. 소설가 시험을 쳐서 합격하면 2급 소설가 자격증이 주어진다. 그러나 소설가가 되었다고 해서 자신이 쓴 소설로 인세를 받거나 계약금을 받지는 못한다. 그 대신 국가에서 일정 금액의 보조금이 나온다.

 

그는 어떤 소설을 쓰게 될까? 나는 결국 이 소설가가 국가에서 쓰라는 이야기를 마지못해 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충효'나 '아지/프로'가 이 소설가의 주요 테마가 될 것이다. 이런 지독한 후진국가가 아닌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설가는 돈이 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무엇이 돈이 되는 소설인지, 혹은 나중에 돈으로 환산할 때 환율이 높은 소설인지 예민하게 살피고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물론 소설을 쓰는 동안 그런 걸 의식하는 소설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똑같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돈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돈을 위해 쓰는 소설가는 우리의 욕망을 읽고 그 이야기를 쓰고 그것의 실패를 기록할 것이다. 돈이 있는 곳에 우리의 욕망이 있다.

 

어떤 사명감으로, 혹은 어떤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면 정말 최악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한국문학의 대표라 생각해서, 자신이 무너지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주체가 있다면 오 그것은 정말 말리고 싶다(겉으론 그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내가 왜 이래야 하지, 라고 생각할 것이라 믿는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똑같이 더 이상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는 경제적 형편에 놓여 있다. 그들의 문학은 재미도 감동도 없기 때문에 교훈도 없을 것이다. 그냥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돈을 가졌는데 더 이상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쓰고 싶겠는가. 그러니 돈이 필요 없는 자들이 하는 말을 믿지 말자. 다들 그냥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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