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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팜과루디
  • 그들에게 린디합을
  • 손보미
  • 10,800원 (10%600)
  • 2013-08-06
  • : 1,339

 

폭우는 예전에 읽었다. 다 읽었을 때 레이먼드 카버가 곧장 떠올랐고, 본인도 순순히 자백했으니 이제 그만 말해도 될 것 같다. 그게 뭐 대수랴. 어쨌든 이 정도 썼으면 레이먼드 카버는 정말 열심히 봤다는 뜻이니. 그러나 레이먼드 카버를 정말 열심히 읽은 것이 뭐 대단한 일인가. 결국 소설 쓰는 원천 기술을 허락없이 훔친 것인데. 그러나 원천 기술을 허락없이 훔친 것 또한 얼마나 사소한 일인가. 삼성은 애플을 훔치고, 애플은 또 머시기 다른 회사 걸 훔치는 판인데. 그러나 정말 훔친 것인가. 정말 그것은 원천 기술인가. 소설은 태생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알게 모르게 훔친 이야기들로, 훔친 형식으로 덕지덕지 이어붙여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인데. 괴물의 기워진 살점을 하나씩 떼어내 이건 누구의 것이고 저건 누구의 것이라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건 그냥 살점일 뿐이다. 단지 살점과 살점 사이의 균열이 제대로 봉합되지 못해 보기 흉하니 자꾸 손가락질 하는 것이지.

 

그런데, 간혹 그 이어붙임이 눈길을 끌 때가 있다. 손보미의 경우가 그런데. 분명히 레이먼드 카버가 모종의 분위기를 만들 때 활용하는 기법들이 손보미의 작품 속에 확인된다. 제한된 공간, 엇나가는 대화, 단편적으로 삽입되는 과거의 경험들, 갑자기 퓨즈가 나가듯 상황을 낯설게 만드는 사건 등등. 이런 컨벤션이 있다. 이런 컨벤션으로 시종일관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여러 장면을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연속적으로 배열하는 기술을 아주 노련하게 구사하기도 한다. 이어붙임이 매끄럽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음, 작가가 열심히 공부도 하고 연습도 했겠지만, 기본적으로 기술이 좋은 것 같다. 점점 기술 좋은 작가들이 좋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더 이상 메시지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나도 배울만큼 배웠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결국 꼰대가 되어서 언뜻보고도 얘가 이런 낡아빠진 소리를 아직도 하고 있구나, 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직은 꼰대가 아닌 것도 같다.

 

그러니까 기술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으니 어떤 메시지도 새롭지 않다. 그러나 혹시 오로지 기술만이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기술은 그냥 기술이다. 메시지는 이제 없어도 그만이다. 그런 것은 나중에 비평가들이 할 말 없을 때 그냥 덧붙이는 것이고. 아, 이거 좀 막다른 골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막 나머지 열 두 명을 찾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거울 속에 나랑 악수라도 하려고 하니, 아 거울 속에 나는 오른손잡이고, 망했다. 한국소설 끝장난 것 같다. 어쨌든 기술은 그냥 기술이다. 그러니 끝장나진 않을 것이다. 좋은 기술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을 터이니, 손보미는 그럭저럭 잘 살아남을 것이고, 나는 또 기술 좋은 작가를 만나면 좋다고 떠벌리고 다니겠지. 그냥 식고 자야겠다. 

 

아, 그리고 누구든간에 작가의 말 컨셉 좀 그만 잡았으면 좋겠다. 흰 종이에 검은 글자가 있으니, 궁금해서 읽기는 한다만 소설의 여운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자기 소설에 자신이 없다면 닥치고 있어야 하고, 자기 소설에 자신이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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