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싫다. 머리가 아프다. 이번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습도가 높다. 머리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니 배도 아프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어야 하고, 머리가 아프다. 이번 여름은 습도가 높고 머리가 아프다.
2016년 여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주로 휴가지에서 사용한다. 2016년에 나는 뭘 하고 지냈나. 공백이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2016년에도 경주에 갔을까. 경주에서 나는 이 책을 읽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요즘 많은 것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다. 지갑과 카드와 전화기와 열쇠와 옷과 책과 가방과...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해 보았더니 잃어버리기 싫고 잊기 싫어서라는 답이 나왔다. 모든 것을 지키고 싶거나 기억하고 싶으니 한두 가지는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거다. 혹은 더 많은 것들을.
그냥 적당히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김금희의 <너무 한낮은 연애>를 읽었는데, 소설을 너무 잘 써서 놀랐다. 잘 쓴다는 게 뭐 대단한 게 아니라 내가 소설 읽는다는 걸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뜻이다. 김금희의 소설을 읽고 나서 다음 소설을 읽으니 내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히 느껴졌다.
소설을 읽으며 소설을 읽는다는 걸 잊어버린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제 소설은 소설로 읽을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소설을 읽다가 소설 이상(이하인가)을 생각하게 되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떄에는 그렇지 않은데, 소설을 볼 때면 이렇게 되어버린다. 이건 매체의 문제이긴 한데, 모든 소설이 그렇지는 않으므로 일부의 소설들에만 적용될 수 있는 (개인적, 이라는 말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미학적 효과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