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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파파님의 서재

#1.

우리사회 전반에 경제적 부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 직업의 대물림이 심각하다. 선택과 집중이 엉뚱한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대물림의 대척점에는 소외와 결핍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몰상식한 교육자들과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일부 관료들, 사교육시장의 사업자들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들에 의하면 이유야 어찌됐던 뒤떨어지는 것은 개인과 가정의 능력의 문제라고 한다.

 

부모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의 룰에 압도되어 수동적으로 의식화될 수밖에 없다. 너도나도 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교육투자를 통해 확실한 미래로 만들고자 한다. 의도된 불확실성에 경도된 수많은 부모들은 쳇바퀴 같은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과 자식들을 밀어 넣는다. 부모들은 하나의 미신을 신봉할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의 미신은 사교육을 통한 교육투자와 직업적 세습만큼 확실한 미래보장이 없다는 확신이다. 이러한 미신을 부정하고 역행하는 사람들은 시대감각이 뒤떨어진 사람으로 치부된다.

 

과연 그 미신은 진실일까?

 

 

#2.

베로니카 로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다이버전트’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파괴된 미래사회의 이야기다. 이 미래사회는 조화를 꾀하기 위한 하나의 사회로서 다섯 개의 분파로 이루어진다. 즉 이타심의 애브니게이션, 용기의 돈트리스, 지식의 애러다이트, 평화의 에머티, 정직의 캔더로 구성된다. 각각의 분파에 속하는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소사회의 규범을 따르고 살아간다. 다이버전트는 이들 다섯 분파에 속하지 않은 변종의 자들로서 이 사회에서는 위험요소로 분류된다.

 

‘다이버전트’에서 말하는 사회는 선악구도와 범주구분의 문제가 획일화된다. 정교하게 구획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선에서 이들은 균형을 이루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사회든, 아무리 안정화된 사회이든 일정한 헤게머니의 출현은 숙명이다. 결국 일부 분파의 불온한 의도로 인해 이들은 균열되고 분리된다. 지식을 신봉하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애러다이트의 오만과 편견은 이들 사회의 균형을 파괴한다. 특히 이들은 어느 한 분파에 속하지 못한 다이버전트를 획일화된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고 색출하고 처단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일정한 범주로 구분되고 획일화를 촉발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한국사회가 오버랩 되는 것은 과도한 착각일까? 특정 관념의 고착과 이를 키우는 교육시스템의 문제를 떠올리는 것은 어느 한 다이버전트의 환상일까? 우리의 현실을 과대포장한 개인의 의견에 불과한 것일까?

 

 

#3.

우리는 늘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경계에 서있다. 우리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길 자처하고 획일화를 부정하는 불확실한 존재이다. 인간의 본성은 일정한 틀로 구분되고 억압되는 것을 부정한다. 그러함에도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은 제도적으로 의식화된 규범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우리사회에도 ‘다이버전트’의 애러다이트적 심성을 가진 이들이 있다. 자신의 부와 지식을 최고로 치부하고 마치 세상사를 깨달은 것처럼 가르치고 명령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정신적 기반에 권력과 권위를 덧붙이고 사회를 규율하려고 한다. 이들 이외의 범주의 사람들은 타율적으로 규정된 질서 안에서 제한된 선택의 자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불순한 집단은 우리사회를 직업적 범주의 고착화를 통해 신분사회로 바꾸고자 한다. 불행하게도 이들에게 경제적 부를 이룰 수 있는 정보와 교육시스템에의 접근권이 집중되어 있다. 이들에 의해 부모의 경제적 부와 직업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증여된다. 이들에게 있어 가치의 재분배와 불평등은 TV토론 프로그램에서나 나오는 거추장스러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정의롭지 못한 시도가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다. 이들은 거창한 이념이나 특정한 관념에 사로잡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학교성적과 학원에 얽매이는 아이들을 안쓰러워하고 가여워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이다. 이들은 십대 아이들의 희망이 교과서나 참고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인간의 본성을 닮은 교육시스템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이들은 소소하게 차려진 저녁식탁과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꿈꾸는 사회를 원한다. 이들은 결코 다이버전트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누군가의 부정한 꿈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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