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를 줍는 할머니, 중학생 알바로 주 3일을 일하는 햄버거가게에서 주 5일 일 할 수 있길 간절히 원하는 정인. 단 두식구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이외에 갈등은 없다. 시원찮은 리어카로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정인이 원하는 것은 오토바이 배달알바를 허락해 주는 것 뿐이고, 할머니가 정인에게 원하는 것은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것 뿐이다.
작은 가시가 아주 살짝 박혀도 엄살을 떨기 마련이다. 아마 정인을 얕잡아보던 같은 반 태주가 그럴테지. 흙을 만지며 식물이 친절해서 좋다는 재아는 손에 굳은 살이 박히게 노력해도 불친절한 바이올린을 해야 하는 상황과의 밀고 당기기를 멈춘다. 태주와 재아는 극단적으로 정인과 대비되는 아이들이지만 정인은 재아와 태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아직은 어리고 세상을 향해 억울하다고 외칠 나이의 정인이 이토록 의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악마의 속삭임과 현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에도 굳은살이 박힌다면 그 굳은살이 어느정도 보호막이 되어줄 수가 있는 걸까? 정인과 할머니는 절대 "만약에...."에 빠지지 않는다. 만약에는 만약이 아닌 현실을 부인하게 만든다. 헬렐은 정인에게 만약에 한마디만 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속삭이지만, 정인은 지조를 지키듯 꿋꿋하게 악마와의 거래를 승인하지 않는다. 만약에 한 마디면 얻어지는 현실부정을 끝내 하지 않고 정인은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콧노래를 부른다. 그것도 경쾌한 리듬으로...... 악마 헬렐조차 놓친 정인의 영혼을 아쉬워 하지 않는다.
한 잔은 너무 많고 천 잔은 너무 적어. 70억 명의 꼭지가 돌게 하는 건 쉬운데 한 명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어린애 하나도 쉽지가 않다니까. 모처럼 유기농 영혼 하나 맛보나 했는데 다 잡은 영혼을 9회 말에 놓치다니. 아무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야.
클로버 233
영혼에도 향과 맛이 있다면 내 영혼은 어떤 향일까?
행운 앞에서 '왜 나인가?' 하고 물을 수 있을까?
어떤 유혹이 더 강할까? 나를 못살게 굴던 얄미운 태주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는것과 호감가는 이성친구 재아가 원하는 이상형이 되는것. 정인은 왜 '만약에' 한마디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준다는데도 바보같다고 생각했을까?
악마 헬렐은 정인을 끝내 유혹하지 못하고도 왜 재미있는 게임을 즐겼다고 생각하는 걸까?
70억명에 속하기는 쉬워도, 악마가 사로잡기 어려운 단 한 명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명이 모여 70억명이 된다면 악마는 그 70억명의 꼭지를 돌게 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사람은 때때로 잊히지만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인 사람은 오래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