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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ie님의 서재
  • 내가 여동생이었을 때
  • 사노 요코
  • 10,800원 (10%600)
  • 2022-05-05
  • : 126

 사노요코는 어린시절 오빠와의 놀이와 상상의 세계로 읽는 독자를 참여시킨다. <홍역>에서 어린 나는 병실 창문에서 환한 구멍 같은 문으로 들어서는 양산 쓴 예쁜 엄마와 오빠를 바라본다. 오빠가 자신을 부러워 할 거라 생각한다. 어느 순간 오빠와 자신의 위치가 바뀐다. 오빠가 아팠던 건지 본인이 아팠던 건지 저자도 읽는 독자도 알수 없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보면 그게 내 일이였는지 꿈이였는지 헛갈릴 때가 많다. 기억 안나는 부분은 올곧이 상상과 소망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들던 어린시절과 가까워 지는 놀라움이 전해진다. <여우>에서 여우목도리에 오빠의 코피가 지워지지 않았을 텐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비싼 여우목도리에 묻은 코피를 보자마자 암마가 "깎"하고 난리가 났을 거라는데, 듣는 내내 엄마가 와서 혼낼까봐 조마조마하지만, 읽는 내내 엄마 립스틱을 망가트리고 엄마 구두를 한 번쯤 신어봤던 그때가 생생하니 펼쳐지는 놀라운 마법이 일어난다. 

<관람차>에 나오는 벌레는 아마 빈딧불이일 것이다. 반딧불이를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반딧불이를 보더라도 예쁘다는 생각밖에 못 할 것 같다며, 관람차를 상상한 자체를 놀라워한다. 오빠 것, 언니 것은 무조건 좋아보이던 그때 내 것이 될 때보다 더욱 강렬하게 갖고 싶지만 아직은 가깝게 할 수 없던 무언가, 그 무언가가 나도 있었을텐데  그건 부러움을 넘어선 경이로움 아니였을까? 

<사슴>에서 감씨를 삼킨 아이들은 사슴이 된다.  과일씨를 삼키면 뱃속에서 자라는게 아닐까 내내 걱정하던 어린시절 그 나무가 자라 사슴이 되는 놀이까지 해 본 적은 없는 나로서는 작가의 상상속으로의 초대가 흥미진진하다. 

<기차>에 오빠만 두고 내리는걸 듣는 아이는 속상하다. 이미 죽은 오빠가 기차에서 사라지면 다시 죽는 것 처럼 느껴져 안타깝다. 하지만 오빠가 많이 보고 싶어 상상한 것이니 오빠는 아직 자신을 잊지 않고 생각해 주어 고마워 할 것이라고 한다. 

  보통의 남매는 사이좋게 놀기보다는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는 일이 많다. 그런데 책 속의 어린 남매는 화목해 보인다. 자신과 사이가 좋던, 평생 나와 함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한 순간 부터 보이지 않느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혼자 놀이를 할 때 상상속에서 오빠와 놀고 본인의 마음에 영원히 11살인 오빠가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그 힘든 애도의 과정을 훌륭히 마쳤음이 틀림없다. "이토록 멋진 놀이의 세계로 초대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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