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달보드레
  •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 이경
  • 13,500원 (10%750)
  • 2023-09-20
  • : 73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벼운 교감과 진득한 애착
인간 아닌 존재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



SF를 읽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행위다. 발달한 비인간 존재와 그런 비인간을 다양한 시각으로 수용하는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인간의 본질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것’은 언제나 ‘그렇지 않은 것’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비인간성을 동반하고 비인간은 언제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다. 떼려 해도 결코 뗄 수 없다. 자신 안의 타자, 그리고 내면의 비인간을 직시한 인간이야말로 인간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작품에는 작가적인 모습이 있고 또 작가에겐 작품적인 면모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경 작가가 꿈꾸는 ‘작품에 초과당하는 작가’란 은연히 SF라는 장르와 닮아 있다.

표제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를 비롯하여 그녀의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AI 혹은 로봇을 포함한 비인간 그리고 인간 간의 공생을 다룬다. 이후 청예 작가의 소설 『라스트 젤리 샷』 리뷰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인간적인’ 사회화의 실패 또한 공생이자 공존의 한 맥락이다. 이해하지 못함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하나의 이해 방식이므로. 작품 속 가상 세계와, 그 세계를 매개로 새로이 알게 될 ‘인간(또는 비인간)’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샘플북에 실린 이경 작가 인터뷰에는 이런 답변이 있다.

”우리가 로봇을 위시한 ‘미래의 노동’에 투사하는 상상은 ‘영원히 젊은 외모와 신체 기능을 가졌으나 그 일만 100년 넘게 해온 노인처럼 숙련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나서서 지시하거나 배려할 필요 없이 힘들고 귀찮고 버거운 일을 척척 해주고, 육아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노동에 처해서도 모르는 게 없는데다 나를 친절히 지도해줄 능력도 있고, 그러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 그런 ‘완벽한 노동자’요.“ _ 샘플북 16쪽

여기서 드러나듯, 이경 작가의 소설에는 생활밀착형 비인간들이 등장한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에는 비주얼 AI 기능을 탑재한 젖병 소독기가,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에는 ‘황새영아송영’이라는 영아 전용 교통편과 이동 중 영아를 맡아 돌봐 주는 전담 로봇이 있다. 최근 대두되는 AI 이슈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농담삼아 ‘인간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완벽한 샤워나 목욕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AI 같은 거나 개발됐으면 좋겠다’, ‘설거지 로봇은 왜 쉽게 상용화가 안 되는 걸까’ 같은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런 우리의 희망사항들이 이경 작가의 소설에 다분히 반영돼 있어서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AI라는 ‘타자와의 교감’에 대한 본질적 우려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형상을 한 친절하고 다정한 AI 친구에게 언젠가 진짜 오류가 생긴다면? 비주얼 AI의 모습으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것이 업체 공지대로 ‘단순한 알고리즘 오류’가 아니면 어떡하지? 아기 세리는 언젠가 분유를 마시지 않을 나이로 자랄 테고 그럼 젖병 소독기는 필요하지 않게 될 텐데, 그때 우리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는 헤어져야 하는 걸까. AI와의 작별은 ‘인간’과 ‘인간’이 물리적 혹은 심적으로 멀어짐으로써 이별하는 것과는 분명 형태가 다를 것이다. 소멸이나 죽음에 가깝지만 되짚기도 추모하기도 어려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선공개된 단편 두 편에 등장하는 비인간들은 인간의 필요를 적당히 충족할 수 있게끔 정교히 제작되었다. 소설 속 비인간들은 쓸모의 영역에 상주하며 인간과 적당히 교감한다. 그러나 가벼운 교감이 반복되면 모르는 새 진득한 애착이 형성되곤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사랑해버리는 존재다….

그래서 이경 작가가 쓸 장편소설이 궁금해진다. 가벼운 교감과 진득한 애착, 그 간극을 오가며 인간 아닌 존재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정의 끝에 도달하게 될 가장 (비)인간적인 희극과 비극을 갈망하게 되기 마련이다. 불현듯 사랑을 왈칵 쏟아 버렸을 때, 끝내 젖지 않을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



❝사랑도 우비로 막을 수 있을까요.❞


🐰 래빗홀클럽 활동을 위해 래빗홀 출판사에서 키트를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