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총리마저 성장과 경쟁, 개인의 야망을 찬양한 이래로 40년이 지났고 그러자 팬데믹과 함께 결속과 평등에대한 중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귀찮은 의무가 없고 권리뿐인 개인으로 사는 것이 재미있고 자극적일 수 있지만 이는순풍이 불 때만 유효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두려움과 불안감을공유할 수 있는 사람, 당신의 약점과 취약성을 존중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다.
시장 이론은 팬데믹 동안 기능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약자는 굴복해야 한다는 것만이 단호한 시장의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을 정리하는 주체는 그동안 고루하다고 평가받았던 국가와 사회 규범, 한심하다고 외면받았던 시민 단체였다. 개인의 자유를 열렬하게 신봉하던 계층조차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해결책이 필요- P35
몇 년 전 달라이 라마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에게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면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가톨릭 사제들의 순결 서약을연상시킨다. 달라이 라마의 이 말에서 나는 의외로 철학적삶의 고독함, 때로 부러움을 사기도 하는 은둔자적 삶이 가진 약점을 느꼈다.- P37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려면 권리와 의무가 가득 찬 천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배우자, 자녀, 부모 등 다른 사람과함께 살 때는 항상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 양보하고 타협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을 우선해야 해서 출장을 취소하고출세의 야망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 두 가지를 모두 갖는것은 항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용서와 겸손, 감사의 능력이 온전한사람이 될 수 없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철학이 가진 보편적 문제점은 플라톤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철학자 대부분이 미혼 남성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을 넘어서는 것들,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사랑이라는 가느다란 실, 그 실이 끊어질 때 열리는 깊은 심연, 배신당했을 때 분출되는 비이성적인 분노, 폭풍이 가라앉은 후 사람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끌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단지 부부나 연인뿐만 아니라 형제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혹은 그에 준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는 반성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만 있는 삶 또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다. - P38
내가 관계에 의해 창조되며 그 관계 속에서 계속 재창조된다는 깊이 있는 식견에 이미 도달했다면, 자아실현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개인주의는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P41
나는 그때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하던 가느다란 실들이썩어 끊어질 위험이 있는, 몹시 결핍된 상황으로 보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바운더리의작은 세상에서 산다. 그럼에도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거나서로 다른 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식민주의라는 뒤틀린 유산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렇게넓고 큰 생각을 할 시대가 완전히 끝나버린 것 같았다. 본능적이고 실존적인 결핍에 집중하는 시대가 된 것 같았다.
세계는 예전보다 심각한 물질적 결핍에서 많이 벗어나있지만, 지금은 다른 형태의 정서적 결핍이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정서적인 결핍은 점점 그 존재가 커질 것이다.
살면서 겪는 이런 유의 결핍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지만 AI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구멍을 지닌 채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사람을 잃어본 사람은 그 비탄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없다.- P68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소비가 아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은 어떤 부분에서는 유용하고 필요하지만사회를 운영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리면 시장은 온갖 것들의 가격을 알지만 무형의 가치는 알지 못한다. - P88
분명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결핍을 서정적으로 찬양했다면 나는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물질적 결핍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적절한 집이없고 운신할 장소도 제한적이다. 그들은 적은 돈을 받고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그조차 운 좋게 일자리를 얻었을 때의 이야기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기회도 없으며 치료가 가능한 질병을 고치지 못해서 고통 받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가난은 어떻게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일수 없다. 배가 부르고 물질에 무감동해진 사람들이 결핍도 일종의 축복이라며 가난한 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이 없는 일이다.- P96
역사가들은 로마 제국의 쇠퇴를 떠올리며 현재 우리문명의 미래를 크게 걱정한다. 쾌락에 사로잡혀 지루하게 사는 무지한 귀족이 없을 뿐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은《유한계급론 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소비의 쳇바퀴에 대해 기백 넘치는 풍자를 한 바 있다. 참고로 이 책은 지금처럼 소비의 악순환이 일상화되기 100년 전에 쓰였다.
미국 중서부 시골에서 근면하고 검소하게 자란 베블런은 보이지 않는 가치는 무시한 채 자신의 성공을 공작새처럼 과시하는 신흥 소비주의 문화를 안타깝게 여겼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베블런의 사상이 다시 이야기되는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질적으로 다 가진 듯 보이지만 그것빼고는 가진 게 없는 이 사회에서, 삶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전기차보다 더 심오하고 OTT 서비스보다 더 본질적이고 쇼•핑보다 더 도전적인 그 무엇이다.
나는 이것을 꿈 혹은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P104
삶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전기차보다 더 심오하고 ott서비스보다 더 본질적이고 쇼핑보다 더 도전적인 그 무엇이다. 나는 이것을 꿈 혹은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다.
다만 이렇게 삶에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목표 지향적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도리어 자기목적적인 활동일 때가 많다. 가족과 친구, 반려동물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강렬한 음악을 듣거나, 따뜻한 여름날 오후에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활동으로 사람들과 혹은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삶을 의미로 채우기에 충분치 않다. 활동의 방향성을 부여하고 추진력을 키우는 에너지가필요하다. 보통 이야기되는 야망이 그렇다. 언젠가 달성될성취를 목표로 하는 행동은 야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다. 야망은 주로 개인의 성취에 대한 것이지만 다행히 이런 충동은 평등한 집단의 이념과 균형을 이루거나 상쇄된다. 특히 농민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반대로 이런 이유로 농촌 청년들이 개인의 야망을 찾아 도시로 이주하고 있지만.
한 번쯤 세상의 중심에 서서 크든 작든 자신의 성취를인정받는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어려운 일을 해냈으면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상황이 좋든나쁘든, 병이 들든 건강하든 수십 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굽는 것, 작년보다 더 나은 조각품을 만드는 것,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만들어 이웃과 즐기는 것.
비물질적인 결핍을 채우는 이런 행위는 음식이나 섹스의 결핍을 채우는 것과 비교했을 때 자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이런 비물질적인 결핍을 자각하는 순간 그것은 내 안의 갈망과 허기를 자극하고 마침내 성취를 이루고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면 온전한 정서적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P105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결핍 자체가 희소한 자원이 된 것처럼 보인다. 관계보다 개인을, 지속 가능성보다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는 끈, 실, 필라멘트가 얇아지고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다.
결핍은 삶의 방향성과 집중도에 필요한 요소이지만, 결핍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삶에 윤활유가 되는 마찰과 저항을 야기한다는 점일 것이다. 마찰과 저항으로 인해 당신은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에 전력을 다하게 되고, 극도로 어렵지만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저항은 결국 성취로 이어진다.
희망이 없으면 저항도 있을 수 없다. 희망은 꿈에서 자란다. 이것이 꿈이 인생의 세 번째 의미인 이유다.-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