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피관리자이자 동시에 관리자가 되어 가고 있없다.
마치 이등병 시절에 그렇게 욕하던 병장을 내가 점점 닮아가듯이. 낼름 먼저 퇴근하겠다는 후배 사원이 어느 날 탐탁지 않다.
보이고, 누군가 휴가를 길게 쓰기라도 하면 무심코 저래도 되나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말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누구보다 MDM을 신경 쓰고 누구보다 이메일을 빨리 확인하고 누구보다 늦게 퇴근하던 나는 어느새 스스로를 관리하고있었다.
이제는 회사의 일방적인 관리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자신이 자신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을 경영하고 착취하는 주체가 된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노출하면서 서로를 감시하는 파놉티콘을 만든다.
-『투명사회」, 한병철- P120
이름은 말 그대로 나를 무엇이라 ‘이를‘ 것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내 이름을 잊으면 훗날 돌아갈 길을 잃어버릴지도모른다. 직급이나 명함을 의탁하는 차원의 존재가 아닌, 본래의내 이름으로 설 수 있기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P120
다양한 사회생활에 맞는 프로페셔널한 가면을 쓰는 것이 성공하는 인재의 핵심 자질이라고그러나 나의 복면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갈수록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그렇게 완벽히 인격을 분리함으로써 회사에서는 인정받겠지만, 과연 훗날 나 자신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다짐했다.
외향성 이상 사회의 완벽한 히어로가 되기보다는, 불안전한세상의 평범한 나로 돌아오기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관재인 The Committee‘이라는 즉홍극이 공연된 적이 있다.
이 연극의 한 대목에서, 어느 남자가 하품을 하고 마치 잠자리에 들 준비가 된 것처럼 팔을 쭉 뻗으면서 무대 중앙에 등장한다. 그 남자는 모자를벗어서 천천히 상상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가발을 벗는다. 천천히 안경을 벗고 안경에 눌린 콧날을 마사지한다. 그러고 나면 코를 떼어낸다. 그리고 이를 뺀다. 마침내 미소를 풀어버리고 누워서 잠이 든다.
마침내 자신 이 된 것이다.- P1299
"너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
나는 잠시 대답이 망설여졌다.
과거에는 명쾌했던 그것이 이제는 흐릿하기에 아직 찾고 있는 중이라고. 그러자 그는 눈썹을 한 번 올리더니 나를 보며 알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P174
내가 짧게나마 경험한 전략 수립은 보통 목표 설정, 시장 조사, 세부 추진안 등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목표 설정 단계에서는 보통, 임원의 지침으로 당사의 사업비전과 목표를 정의한다. 대개 기업의 비전이란 것은 ‘인류의 영원한 행복 추구‘, ‘소비자 가치 극대화‘와 같은 구름 위의 단어들이나 ‘글로벌 No.1 달성‘, ‘신규시장 3위권 진입‘, ‘매출 100억원목표‘와 같은 건조한 숫자들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온갖 소설가와 과학자, 정치가의 역량이 집약되어야만 한다.
시장 조사 단계는 스마트폰 판매 및 매출 규모부터 산업별 고객 동향, 경쟁사 분석 등이 포함된다. 보통 전문 시장조사업체- P178
자료를 참고하거나 구글을 검색하는데, 여러 업체의 시장 데이터가 조금씩 다를 경우가 있다. 그러면 보다 정교한 데이터를 위해 변수들을 고려하고 가정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석 여행이 시작된다. 그렇게 쪼그려 앉은 사무실 구석에서 글로벌 모바일 시장의 거대한 캔버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세부 추진안 단계에서는 임원의 대략적인 가이드를 기반으로 한 ‘하향식(Top down)‘ 방식과 실무 부서장들의 인터뷰와 취합을 통한 ‘상향식(Bottom up)‘ 방식을 접목한다. 10대 추진안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10대에서 5대로 줄이는거나 문장을 바꾸는둥 지난한 퇴고의 과정을 묵묵히 견디는 완벽주의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내용을 단 한 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의 세월을 보냈던가. 실로 전략 수립의 정수는 이 한 장을 얼마나 완벽하게 그리는 것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매일 밤 나는 단 한 장의 핵심 장표, 아니 오징어를 만들었다.- P179
일요일 밤마다 ‘일‘이란 단어는 전 인류에게 재앙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괴로움을 벗어날 고육책을 찾아냈다. 바로일과 삶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다.
2일을 위해 5일을 사는 삶‘
‘일년에 두 번 있는 휴가를 위해 일 년 내내 야근하는 삶이러면 우린 견딜 수 있다. 퇴근과 휴가라는 구원이 있기에비록 매우 드물지라도 그 기나긴 일이라는 괴로움도 어떻게든참아낸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진짜 나의 삶은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인생을 믿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내가 무엇을 믿지고 있는지조차 망각하는 순간이온다. 일할 땐 주말을 생각하고, 주말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때문이다.- P240
tvN의 ‘꽃보다 청춘‘을 보면 사십대가 된 세 명의 가수들이 남미로 여행을 떠난 시즌이 있다. 어느 날 그들이 저녁을 먹으며음악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PD가 물었다.
"어떻게 보면 일 얘기 아닌가요?"
그때 한 가수가 대답했다. 일 얘기는 앨범 작업이나 녹음 방식같은 것이고, 음악 그 자체를 논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고 그러면서 그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음악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난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P241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싶은 걸까?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 목표를위해 내 안의 열정을 불사르며 스스로 타오르는 태양과 같은 사람들.
그러나 나는 달빛과 같은 사람이었다. 주위의 인정이 없다면스스로 빛날 수 없는 사람. 세상이 원하는 것을 나의 목표로 설정하며 나는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P246
어쩌면 나는 이런 세상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판 월든과 같이 본질에 집중하는 삶. (여기서 ‘본질‘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모두가 꿈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며 단념하는 책 속의 이야기.
그러나 나는 당장 무슨 거창한 가치나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회사를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 해도 경제적요인을 무시할 순 없었다.
뉴욕타임즈 기자 출신인 케빈 루스는 그의 저서 「영 머니」에서,
‘돈이나 직업 안정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열정만으로 진로를 결정하는건 특권층처럼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저 나는 몇 년 뒤를 바라보며 실험을 하고 싶었다. 회사라는세계 밖에서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경제적 기반을 확보할 수있을지. 헬렌 니어링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쓰는 삶을지속할 수 있을지 말이다.- P268
불안하지만 후회는 없다.
후회는 없지만 불안하다.
두 가지는 같은 말이지만 다른 말이고또한 둘 다 사실이기도 하다- P289
1인분 인생, 우석훈, 상상너머, 2012년••4천원 인생, 안수찬 외, 한겨레출판, 2010년•Management, 피터 드러커, 이건 외 역, 21세기북스, 2008년•Work, CrimethInc., 박준호 역, 마티, 2012년•가치란 무엇인가. 짐 월리스, 박세혁 역, MP, 2011년감정노동, 엘리 러셀 혹실드, 이가람 역, 이매진, 2009년•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에릭 슈미트 외, 박병화 역, 김영사, 2014년•기업과 문화의 충격,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3년.
•기업의 시대, 중국 CCTV 다큐제작팀, 허유영 역, 다산북스, 2014년• 기업의 역사, 존 미클스웨이트, 유경찬 역, 을유문화사, 2004년.
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시공주니어, 1999년•당신은 전략가입니까, 신시아 A 몽고메리, 이현주 역, 리더북스, 2014년・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유하, 문학과지성사, 1991년•보다. 김영하, 문학동네, 2014년• 삼국지, 나관중, 이문열 평역, 민음사, 1988년•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역, 민음사, 2011년• 시간, 칼 하인츠 A 가이슬러, 박계수 역, 석필, 2002년시간의 향기, 한병철,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3년실론섬 앞에서 부르는 노래, 파블로 네루다, 고혜선 역, 문학과지성사, 2000년·심리정치, 한병철,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5년- P290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안냐 푀르스터 외, 장혜경 역, 북하우스, 2014년•영 머니, 케빈 루스, 이유영 역, 부키, 2015년・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개마고원, 2013년•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강승영 역, 이레, 1993년·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호미, 2006년• 인연, 피천득, 샘터, 2002년•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정영목 역, 은행나무, 2012년● 입사 후 3년, 신현만, 위즈덤하우스,2005년•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오찬호 해제, 후루이치 노리토시, 이언숙 역민음사, 2014년조직의 재발견, 우석훈, 개마고원, 2008년•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류시화 역, 보리, 2000년콰이어트, 수전 케인, 김우열 역, 알에이치코리아, 2012년•투명사회, 한병철,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4년•편의점 사회학, 전상인, 민음사, 2014년•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노명우 풀어씀, 사계절, 2008년・피로사회, 한병철,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2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문학사상사, 2008년・희망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전미영 역, 부키, 2012-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