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철학에서 배운 매우 유용한 사고법이다. 누군가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의 전제부터 되짚어 보는 것이다. 누군가 늑대는 집단생활과 사냥 같은 자연적 행동을 할 때만 행복하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그 전제부터 본다. 그 속에는 대부분 인간의 거만함이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는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existence precedes their essence‘고 정의한 적이 있다. 이것은 실존주의로 알려진 철학 사조의 기본 명제이다. 그는 인간 존재가 대자적 존재being-for-itself. 자신을 대상화해서 관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는데 이것은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존재가 즉자적 존재being-in-itself. 필연성에 지배받는 존재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지배한다.- P62
즉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선택하고 종교 · 도덕·과학 등이 정해 놓은 기존의 규칙이나 원칙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원칙,
도덕 또는 종교적 금언을 채택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 우리가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든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가 지닌 자유의지의 표현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유롭도록 태어난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사르트르 철학의 이면은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가 자유롭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것들, 심지어 그 어떤 생명체조차도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늑대가 사냥을 하고 무리지어 사는 동물로 진화했다면 그렇게만 살아야 한단다. 시간이 끝없이 흘러도 늑대는 자신의 존재를 지배할 수 없단다. 늑대는 그저주어진 삶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늑대에게 그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깔린 전제는 ‘늑대는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사르트르가 인간의 자유에 대해 주장한 바가 옳은 것인지조차 명확하진 않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그 주장의 진위보다는존재의 유연성에 대한 보편화된 생각들에 가 닿는다. 왜 오로지 인간만이 수천 가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고, 다른 생명은 생물학적 유산에 속박되고 자연의 역사에 종속되어 살아야만 한다는 말인가? 이것이 인간의 오만함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P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