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운동이나 다이어트, 돈 모으기, 시험 같은 걸 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개연성 충만한 현실의 사건들에도 언제나 예외의 예가 되는 이가 있다.
나에게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아무 이유도 없이 존재하는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메리 소이. ‘소이’는 ‘나’(은수)의 엄마의 잃어버린 친동생이다. 엄마는 미미제과가 창사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백일장에 미미제과의 딸기 맛 웨하스에 얽힌 자매의 사연을 보낸다. 엄마의 글이 당선되면서 미미제과는 과자 상자에 소이의 사진을 넣어 광고하고, ‘나’가 살고 있는 집을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처럼 꾸민다. (흰색 베레모를 쓰고, 붉은색 코트를 입은 사진 속 소이는 트리의 Merry Christmas 앞에서 ‘Christmas’를 가린 채 서 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소이를 ‘메리 소이’라고 부른다) 나의 집에는 흰 베레모에 붉은색의 코트를 입은, 본인이 메리 소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어른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벨을 누른다. 그리고 나의 가족은 일관되게 친절을 베풀고, 신뢰하며 여러 메리 소이를 맞이한다.
어느 날 앞선 소이들과는 달리 소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평범한 옷차림을 한 ‘제리미니베리’가 찾아오는데, 가족들의 태도는 한결같이 태연하다. 무릇 잃어버린 가족이 있다면 가족을 찾는 데 안달 났거나, 찾아온 가족을 붙잡고 엉엉 울어 버리거나, 어쩌면 사람을 믿지 못해 화를 낼 법할 텐데. 나는 예의 그 옷차림과 상관없이 무엇에도 동요 않는 가족들의 스탠스에 스며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메리 소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다림에 손을 뗀 듯한 묘한 분위기에 자주 멈추게 되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끝없는 기다림, 돌연하게 맺어진 관계, 감춘(춰진) 사실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훌쩍 컸지만 고장 난 인형 ‘미사엘’ 돌보기에만 열중하는 은수, 그런 은수를 가만 내버려 두는 부모, 서술되지 않아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던 은수의 동생, 피를 나누지 않은 삼촌, 자살한 막장 드라마 작가 ‘마로니’ 등 소란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은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요동을 그저 덤덤하게 내버려 둬 요동이 요동이 아니게 된 점이 새로웠고, 이 새로움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된 게 가장 즐겁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야 오류가 드러난다. _67쪽
우리에게 제리미니베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사건이었다. _68쪽
삶은 도무지 아무런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운동이나 다이어트, 돈 모으기, 시험 같은 걸 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개연성 충만한 현실의 사건들에도 언제나 예외의 예가 되는 이가 있다.
나에게 제리미니베리가 그런 존재다. 이야기 속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개연성과 무관한 존재. 아무 이유도 없이 존재하는 존재, 혹은 시스템의 작은 오류 같은 존재. _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