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언제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기에 처음 펼친 이야기에서 기존의 취향을 만나기도 하고, 내면에 숨어 있는 기호를 발견하기도 한다. 둘 다 아닐 수도 있지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혼자만의 시간. 그 귀한 시간을 줄 수 있기에 소설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몸과 마음이 무한히 밖으로 내뻗을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한없는 가능성의 세계라는 점에서 소설은, 문학은 그 자체로 승리인 것 같다.
『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은 작가 김솔의 독특한 상상력이 빚어 낸, 재밌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큰 특징은 홀수 장(1, 3, 5장)과 짝수 장(2, 4, 6장)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홀수 장에는 중남미 여행담을 들려주는 대가로 맛 좋은 음식을 요구하는, ‘겟세마네’라는 수용소에서 살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가, 짝수 장에는 ‘나’의 복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이야기를 풀어놓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해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이를 눈치채고는 바로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경험의 반복이 좋았다. 흥미진진해 나도 모르는 새 한 칸 한 칸 문을 젖히고 소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게 된 것도. 작가는 욕구, 망각, 복수, 삶, 죄악, 증오, 사랑 등 다양한 낱말로 질문을 던진다. 질문 속에서 사유를 확장하고, 융합하는 즐거움을 바라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에 대한 세 가지 믿음뿐이죠. 시간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시작은 없어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있는 인간들은 미세한 흐름을 결코 감지할 수 없다는 것. _15쪽
어떤 자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타인을 죽이지요. 그리고 어떤 자는 타인을 살리려고 습관적으로 자신을 죽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인간을 완전히 죽이거나 살려낼 순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반쯤 죽은 채로 살아 있기 때문이죠. _22쪽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