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미지가 빚어내는 하나의 세계
교수 2024/12/29 10:53
교수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 음악과 이미지
- 박찬이
- 58,500원 (10%↓
3,250) - 2024-12-20
: 2,355
<음악과 이미지>에 대한 단상
박찬이 저/ 풍월당 간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 두 문장처럼.
'17세기 작가 요한 베어의 소설 <음악 전쟁>에는 흥미로운 도판이 있다.... 사실 이 지도는 알레고리화된 가상의 음악세계다.... 기악의 땅... 착상의 호수... 무지의 호수... 신심의 강... 즉 요한 베어는 동시대인들의 음악에 대한 사고를 시각화해 가상의 지형도에 배치한 것이다.... 콘트라풍크티... 푸가의 숲, 카논의 숲....'으로 전개되는 문장. 작가 박찬이의 풍월한담 <이미지와 음악> 연재시리즈의 첫번째 글 첫째 쪽의 문장과 단어들은... 나에게,
<설국>의 전체를 인상지은, 눈의 고장 그 밤의 밑바닥보다 더 새하얬다.
이 불과 3쪽 반의 문장을 통해 바흐의 <푸가의 기법>으로부터 그가 풀어내고 그려내 보여주고 있는, 가상의 <음악 세계 지도>를 통한 <음악 세계> 이야기를 만난 첫 인상은 실로 강렬했다. 뭐지 이 쎄한, 아니 이 새하얀 느낌? 뭐지? 누구지? 이 덕후?
이후 풍월한담이 세상에 나오는 스무번의 시간들을
손꼽아 고대하던 이유의 맨 처음에는 <풍월한담>의 그 93쪽을 읽어내려갔던 시간의, 전율적 인상과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었다.
●●
이 작은 전율에 한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그가 직접 연출하고 촬영한 바흐 <푸가의 기법> 음반 소개 정물 사진(풍월한담 1권 96쪽)을 통한 나의 개인적 경험이다.
연재 시리즈 첫 글에 함께 담겨있었던, 책장을 넘기는 순간 감전된 듯 입을 다물 수 없었을 정도였던 이 강렬한 정물 이미지에는, 대위법으로 대표되는 기법과 체계를 통해 바흐가 드러내려고 했던 그 무엇이 다 녹아들어있는 듯 했다.
빛과 어둠의 조화. 꽃들이 뿜어내는 만화방창 색채들의 자유. 인공물들의 자연스런 공존. 그리고 이들 모두의 완벽한 질서. 그 고요(still life) 속에서 마침내 들려오던 바흐.... 그가 타고났다던 색청(colored hearing)의 반대 프로세스(이미지를 보니 음악이 떠오르는)를 경험케해 준 놀라운 한 장의 이미지였다.
●●●
그리고는 몇 해가 흐른 며칠 전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에 나온 풍월당책 <음악과 이미지>는 실로 또 놀랍다. 풍월당이 그래왔듯, 책 안팎의 디자인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기품있다. 수록되어있는 도판과 이미지들 하나하나의 완성도 또한 놀랍다. 대충 일독일견해본 바로는~ 스무번의 <풍월한담> 연재글을 바탕으로 했으나 당시의 다소 산만했던 글들의 흐름과 체계를 1.악기의 음악(Musica Instrumentalis) 2.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3.우주의 음악lMusica Mundana)의 큰 분류를 통해 재배치 보강함으로써, 전체 내용의 단단한 뼈대를 세워냈다. 아울러 문장을 다듬고 보태고 새 글들까지 덧붙이는 노고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책의 두께에 걸맞는 내용의 수준 또한 이루어냈다.
한마디로 대단한 책이다. 풍월당도 그도, 함께 대단하다. 세상에는 어설픈 프로를 손쉽게 꺽어버리는 딜레탕뜨들이 많다지만, 박찬이는 '쥴리마녀'라는 그의 별칭답게 그 대열의 맨 앞 자리에 있다. 앞으로의 2쇄는 분명하고, 더 나아가 그가 혼자 몰입하고 있는 덕후의 세계를 나같은 무지렁이게 더 자주 은사해주시길 간청드려 본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