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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거기 지금-여기

'봉준호 장르'라는 말이 태어난 영화 <기생충>을 개봉일(5월 30일)에 봤다. 이틀 뒤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고. 감상평을 듣고 싶었으나 하루를 참았다.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칸느영화제의 그랑프리_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일까,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내게는 개운치 않은 뭔가가 남은 작품이었던 것, 그렇게 열심히 관련 기사를 읽은 것 같지는 않은데,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내가 극장을 나선다는 지인에게 보낸 문자는 다음과 같다. '스포일러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

 

스포일러주의보 발령! '스포일러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

이 영화의 감독도 영화제 현장에서 세 개의 언어로 스포일러 주의를 당부했다 하고, 귀국 후 인터뷰에서 그런 당부를 잊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기존 영화 문법의 모범답안을 뛰어넘는 플러스 알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칸느영화제를 의식하고 제작한 것은 아닐 테지만 결과적으로 칸느영화제 수상을 위한 영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칸느 영화제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흥행과는 반비례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영화를 보면 재미 삼아, 또는 나의 대중성 인지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흥행 예측을 해보곤 하는데, 수상 효과가 적지 않게 작용하겠지만, 그런 사실을 배제한다면 ‘대박’까지 기대하기는 좀 힘든 영화가 아닐까! 한 편의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 그런 기준으로 볼 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앙금처럼 남았다. 해서 개봉중인 다른 영화 한 편(<악인전>)을 극장을 옮겨가면서까지 관람해야 했다. 그리고 이 글은 어제 조조(5000원이란 착한 가격 덕분에)로 한 차례 더 <기생충>을 보고서 쓰고 있다(그게 뭐지? 스포일러 때문에 훗날 쓰기로 한다).

 

이틀 만에 한 차례 더 본 영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앙금처럼 남아
내가 혹은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팝콘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그렇게 분류되는 영화들은 작품성이란 측면에서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너무 진지하고 고단한 삶에서 잠시 떠나 있고 싶은 소박한 바람,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이라도 현실을 잠시 잊고 싶은 그런 어루만짐에 대한 기대, 이것을 거의 모든 영화들이 지향하는 '대중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이에 있다. 그러니까 '봉준호 장르'는 문제소설이라고 하듯 문제(예술)영화와 대중영화라는 '사이' 어딘가에 있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한 편의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이 아니지 않을까?

이승우는 문고판으로 펴낸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저 아래층에서 끌어올려라>) 얘기한다. "소설은 대체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어쩐지 허전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 하는 질문과 맞닥뜨리지 않겠는가"(책 146면)라고, ‘그래서 어쨌단 말이야?’라는 핀잔을 듣는 소설은 지표수의 물론 만든 맥주와 같다는 것, 그는 '지하 150미터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로 만든' 맥주의 히트 사례를 예로 들면서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필요하다면 신화를 활용하고 상상력을 풀(full)가동할 것, 상징과 은유를 적극 활용한 소설로 다양성과 개성을 확보할 것을 주문한다.


"만일 그들의 사랑이 현실(지상)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한 주인공들의 지하(비현실)에 대한 꿈꾸기나 신화 속 인물에 대한 동일시의 과정을 보여준다면 소설은 달라질 것이다. 층이 생기니까. 그 내부의 깊은 층에서 끌어올리려 한다면 메타포나 상징은 지표면의 그렇고 그런 사연들에 대한 및을 비춘다." (책 146면)

 

 

주인공들의 지하(비현실)에 대한 꿈꾸기나 신화 속 인물에 대한 동일시 과정을…….

 -작가는 소설 작법을 다룬 이 책에서 몇몇 작가들의 작품을 제시하지만, 인용한 부분의 사례로 그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이 대표작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2015년(39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숨 작가의 중편소설 「뿌리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대칭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로 인식의 지평을 넓힌 혹은 연장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인간이 나무로 변신하는 모티브 못지않게 지하(뿌리)의 세계가 신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여 새로움을 창조한다.

-오디비우스의 『변신이야기』는 그러한 일이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상상력 사전이라고 할 수 있으면, 이런 관련성은 다른 글에서 이미 살폈다.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변신이야기』, 가장 오래된 상상력 사전

시간(서사)과 공간(묘사)은 소설에서나 영화, 모든 이야기의 기본 구성요소다. 우리 삶의 전제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좋은 소설(이야기)에 대한 이승우의 주문에도 A플러스 학점을 받을 만큼 모범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반지하-지상이라는 현실 속 공간에 대한 설정, 그것은 또한 상상력의 영토를 확장이며, 동시에 인간들의 빈부 차이(계급갈등)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이 점이 돋보인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사장의 저택이라는 공간의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부엌 창고에서 지하의 세계로 ‘내려가는’ 혹은 ‘떨어지는’ 계단에 주목한다. 잘 다듬어진 잔디 정원은 '그렇고 그런' 풍경일 수 있지만 지상층과 2층(이상) 공간들은 실제 집의 구조보다도 넓고 쾌적한데, 지하의 세계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설정으로 읽힌다. 어쨌든 영화 <기생충>은 서사를 제외하고도 공간에 대한 묘사(세트 설정과 세팅)만으로도 상당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지상, 현실 공간에 대한 설정, 빈부 갈등에까지 연결

"아무리 튼튼한 담론이라고 해도, 아니, 튼튼할수록 더욱더 스스로 몸을 해체하여 다른 몸으로 변신하여야 한다."(이승우 같은 책, 141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지하(저승)를 통치하는 은둔의 신 하데스가 딱 한 번 직접 등장할 법한 사건이 벌어진다. 제우스의 재가로 올룀포스의 신들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아군)에 가세하여 총력전이 벌어지는 20권에서다. "좀 조용히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요란한 지상의 전투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참전하는 것(여기까지),

 

*영화 <기생충>에서 펼쳐지는 지하의 세계에 대한 설정은 (특히, 3월에 개봉한 <어스US>를 비롯 지하세계를 다룬 영화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적인' 현실성이 겸비되면서 관객을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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