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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거기 지금-여기

부제는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독서 지도'.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이야기하다가 영화 <300>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영화 <300>부터 이야기한다. 아니 영화 <300>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교양의 기본인 고전 읽기가 그만큼 대중들의 독서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거리가 상당하다는 반증이다. 영화 <300>2도 예외는 아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 그리스 5인 로마 5인, 천병희 선생이 가려뽑은 10인의 그리스로마 영웅 가운데 테미스토클레스가 있는데,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 <300>2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정한 거리가 너무 멀어 늘 '안타까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간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를 읽는 중인데, 생각을 정리하려고 인근의 카페를 찾았다. 처음 가본 곳, 30대 중반의 듬직한 몸을 가진 청년이 주인이다. 마침 월요일이라 인근 기념관들이 휴관이기에 한가하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이어서 쓸 글감을 기획하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열공하는 학생처럼 책들을 늘어놓고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카페 주인 총각과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마침 어렵게 구한 오늘자 <한겨례> 천병희 선생님 플라톤전집 출간 인터뷰 기사(탁자에 놓았는데)가 계기였다. 발뒷꿈치를 가리키며 '아킬레스 건'에 대한 이야기로 『일리아스』 얘기를 했다. 프로이트가 정립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하는 것으로 소포클레스의 유명한 비극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시작했다. 늘 이런 식이다. 왜 늘 이래야만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킬레스 건'에서 시작하는 『일리아스』 얘기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저자 최혜영 교수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 정리하자면 (한국인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길을 낸 저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명에 포함된 단어 '깊이'는 이 책을 통독하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언질을 한다. 천병희 선생은 이번 플라톤전집 완간 이전에 그리스 3대 비극작가들의 현존하는 작품들을 완역한 세 권의 전집을 출간했다. 『아이스퀼로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소포클레스비극전집』(2008년 10월), 『에우리피데스비극전집』1.2(2009년 5월)이 그것이다. 33편의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의 현존 작품들을 완역한 해가 2009년인데, ‘원전번역 그리스비극전집세트’(전4권) 가격은 100,800원(알라딘 10%할인)이다. 이어서 천병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존 비극들을 완역한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전2권, 2010년 11월)도 펴냈다.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한 걸음 더 들어간 '깊이'

이 가운데 '아리스토파네스희극'은 예외로 하더라도,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를 탐독하기 위한 사전독서는 험난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포개면 베개로 쓰기에도 너무 높은 네 권의 하드커버(양장본) 비극전집을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은 <페르시아인들>(아이스퀄로스 지음)로, 드물게 인간의 역사(페르시아 전쟁)를 다루고 있지만, 그리스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 공부는 필수다. 그런데, 그리스신화는 '그리스신화'를 다룬 저작이 명확하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니고(엄밀하게는), 당시에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나 『신들의 계보』 그리고, 비극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화 소재들을 집대성하는 것을 통해, 그리스 신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현재도 예외는 아니다.

 

'오리무중' 그리스 신화, 작품을 통해 만나야 하는 황홀함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데, 작품 그 자체(텍스트)에 집중하는 데에 필요한 사전 독서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역사적)이고 어디서부터가 인간의 역사인지? '소크라테스(-플라톤) 문제'처럼 그리스 비극을 읽는 '그동안' 신화와 비극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앞서 거론한 <페르시아인들>(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극이 하필 이 작품, 인간의 역사를 대놓고 다룬 작품이라는 것이 역설이며 시사점이 있다)은 작품 자체의 '존재 증명'이랄까, 예사롭지 않은 숙제를 이미 던지고 있었다. 최혜영은 그리스 비극을 제대로 읽으려면('깊이') 당대의 역사와 정치사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인데, (적어도 한국의) 그리스 비극 읽기에 새로운 차원을 제시하고 있는 것.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본이고, 투퀴디데스가 안내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정독해야 그리스 비극을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그런 길을 제시한다.

 

『역사』는 기본,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정독해야

사실, 그동안 우리의 그리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아테나이를 중심으로 하고, 곁가지로 스파르테가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는(정리하자면) 필자의 견해에 적극 공감한다. 1970년대 순수-참여 논쟁에 이어, 1980년대에는 당시의 민주화투쟁과 맞물려서 민중문학이나 노동문학이 화두었다. 한 편의 시보다 교문 앞에서 전경들과 대치할 때 던지는 짱돌 하나, 화염병 하나가 절실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문학도가 '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여(미국의 신비평) 읽고 논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문학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학생이 그러했고, 1980년대 대표시인으로 분류되는 현역 시인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극심한 고뇌의 세월을 보낸 그런 시기였다. 작품을 그것이 집필된 시기의 역사적·정치적 환경 관계에서 살피는 것이 화두였고 당연시되었음에도, 그리스 비극은 관심 밖의 영역에 있었고, 문득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생산된 배경과 관련하여 살피는 최혜영 교수의 저작을 만나, 만감이 교차한다고나 할까?

 

한 편의 시와 짱돌 하나와 작품 그 자체 80년대

그리스비극을 '작품 그 자체'에 집중하여 분석하고 그 장르의 위대함을 역설한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시학>)이고, <시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수사학> 천병희 번역 『수사학/시학』은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거의 당대의 '개론서'라고 할 수 있다. 번역가 천병희 선생의 몇 안 되는 저서 중 하나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년 3월)다. 그가 독문학자이며 어느 영역보다 그리스비극이 '전문 분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다. 그리스 비극을 한국적인 정서에 입각하여 새롭게 해석한 책(연구) 하나를 꼽는다면 김상봉 교수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년 1월)다.

 

교수 천병희는 독문학자, 그리스 비극은 전문 분야

『일리아스』처럼 단도직입으로 시작하면 좋으련만, 이러한 (한국의 고전 읽기) 상황 때문에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는 쉽지 않은 책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산물이다. 내용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관련된 비극 작품이나 역사와 신화 배경에 대해 본문에서 다뤄야 하므로, 비극 전집을 정독한 독자에게도 '새로운' 혹은 '생소한' 책이 되는 것, 관련하여 '깊이' 읽은 독자에게는 군더더기가 되는 이야기들도 포함해야 하는 의무가 얼마나 걸렸을까, 그러나 이러한 '작업' 또한 시대의 반영이다.

 

최혜영의 『그리스비극 깊이 읽기』, 사실은 개론서

이 글은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라는 훌륭한 책을 '깊이' 읽기 위해 전제된 사전독서의 지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리스 비극 덕분에 인연을 맺은,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선생을 비롯, 사학과의 최혜영 교수까지 전남대학교는 드물게도 그리스 비극의 전문가 (최소한) 두 사람을 보유한 지방의 국립대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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