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동안 많이 보아 온 소설과 달리 보다 완벽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너무 현란할 정도의 문체를 오랜만에 봤다. 아, 문학은 원래 이랬지!
이창래 작가의 작품은 평균적으로 한 문장에 70단어 이상을 담고 있고, 이 책 <타국에서의 1년>도 예외가 아니라 첫 문장이 69단어로 이뤄져 있다. 게다가 이런 문장으로 전달되는 얘기가 익숙함이나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 얘기를 이끌어 나가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심리 역시 이해하는 것보다 고찰에 가까운 복잡하고도 고차원적인 내면 심리 묘사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위대하다는 나라 어디에 사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벨과 엑스라지 사이즈인 그녀의 아들, 빅터 주니어에게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곳은 다른 대부분의 지역과 비슷하다.
너무 끔찍하거나 불편한 것도 없고, 변치 않는 경관이나 감탄할만한 독특한 전통도, 특이한 억양도, 영 의문스럽거나 혐오스러운 지역민의 습관도 없다. 이곳을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지만 나는 '스태그노-액체가 고여 흐르지 않는 상태'라고 부르겠다.
<타국에서의 일 년> 주인공은 이십대 청년 틸러 바드먼이다. (Tiller is an average American college student with a good heart but minimal aspirations. Pong Lou is a larger-than-life, wildly creative Chinese American entrepreneur who sees something intriguing in Tiller beyond his bored exterior and takes him under his wing.)
한국인의 피가 아주 조금 썩인, 거의 백인과 구분되지 않는 그는(아마 프린스턴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대학교 도시, 던바 출신이다. 자산가가 많은 이 도시의 친구들만큼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대기업 관리직인 아버지 덕분에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는 않았다.
틸러가 느끼는 결핍은 경제적 측면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애정적, 심정적 경험의 결핍이다. 틸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가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틸러는 그러한 이유로 어머니에게는 아주 단편적인 기억만이 있을 뿐이다.
틸러의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때로는 온건하다. 그런 아버지와 알게 모르게 벽이 있다.
틸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중국계 사업가인 퐁 로우를 만난다. 틸러는 퐁 로우와 함께 하와이, 마카오, 션전을 누비며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틸러는 타국에서의 일년을 거친 뒤 예전처럼 순수한 인물은 아니게 됐고 그 여행을 통해 마냥 성숙해지지만도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만난 연상의 여인 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밸과 나는 비교적 복잡한 삶의 문제에 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최초의 맹세를 깼다.
우리는 뭐랄까, 혈연관계에 대한 배경 정보라든지, 어린시절의 핵심적인 순간이라든지, 인간관계에서 겪은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P.99
조금은 진부할 수 있지만 틸러는 어머니를 잃은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 갇혀버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연인인 밸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작가는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루트, 또는 그 경과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 같지만, 마치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봤던 20대의 방황과 성장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너무 멀리까지 떠나 버린 한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과 방황,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자 이창래는 말그대로 타국에서의 1년을 쓸만한 이방인의 경험을 한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잠재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명문 예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리건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으로 전 미국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펜/헤밍웨이 문학상 등 미국의 주요 문학상 6개를 수상했다. 지금은 스탠퍼드 문예창작과 교수롷 일하고 있다.
벨과 있을 때 나는 사실상 숨 쉬듯 그녀의 이름을 말한다. 할 수 있을 때마다 소리쳐 부른다. 우리 집 구석구석에 울리도록, 안뜰에서, 거리에서, 그 소리가 그녀를 이자리에 붙들어 맬 것이라고 기대하며/ 노래는 소망이 아니다. 노래는 꿈이 아니다. 노래는 내게 남겨진 것, 내가 맛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 말은 내가 비교적 위험한 조경장비들을(주황색 감개는 말할 것도 없다.) 맹꽁이 자물회를 채워 둔 헛간에서 해방시켜 차고 벽을 따라 놔두었다는 뜻이다. ---P.686
사실 소설 리뷰를 할 때는 늘 걱정이 앞선다. 자칫 잘못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자니 밋밋한 수박 겉핥기의 서평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 긴 이야기보다는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소설의 맛을 보았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낯설다는 것' 내포한다.
젊은 시절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고뇌와 혼란, 시공간적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자유로움이 모두 담겨 있다.
김연수 소설가의 추천평이 작품의 가능성, 진가를 말해준다.
특히 틸러가 ‘나’를 찾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무한히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방황하는 이삼십대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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