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스라이팅'은 일상의 친밀한 관계에서 걱정과 애정을 앞세워 상대가 자기 판단을 대신하고, 상대의 경험을 부정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가스라이팅은 친밀한 관계와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고 가족, 학교, 직장, 친구, 연인 관계 등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고, 자책과 위축이 반복되는 감정 무력화와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고립과 의존 현상이 일어난다. '모두 너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처럼 배려나 충고로 포장되는 표현이 반복된다. 이런 가스라이팅으로 심리적 지배를 했던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시베리아의 농부 아들로 태어난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18살 무렵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고, 19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났다. 당시 신비주의에 빠져 있던 몬테네그로 출신의 대공비의 주선으로 시베리아 농민 출신의 방랑 순례자는 스타레츠로 스스로를 칭하며 황실로 스며든다. 라스푸틴은 제정 러시아 말기 황실의 마음을 사로잡고 국정을 뒤흔들었던 신비주의 사제이자 정치 선동가였고, 사기꾼이였다.

심리적 지배는 대개 폭력적인 얼굴로 오지 않는다. 오리혀 부드러운 얼굴로, 따뜻한 목소리로,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표정으로 다가온다. 이것이야말로 심리적 지배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해온 이유다. 사람들은 폭군은 경계하지만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느끼는 사람은 경계하지 않는다. 경계하지 않는 자리를 서서히 스며드는 힘이야말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완벽한 지배의 방식이다. 혼란은 구원자를 부른다.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안정된 언어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를 먼저 찾게 되고, 그 목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따져볼 여유조차 없게 된다. 제정 러시아의 말기도 그랬고, 그런 상황에 라스푸틴이 등장한다. 혼란의 시대에 가장 조심해야 할 구원자는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나는 목소리일 수도 있다. 지치고 흔들릴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손쉬운 답을 속삭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