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집트 미라는 죽은 사람의 시신이 썩지 않도록 보존한 것을 말하는데, 당시의 시대상과 과학기술의 수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렇게 미라를 만든 이유는 사후세계에서 삶이 계속된다라는 강한 믿음 때문에 육체를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주 흥미로운 점은 모든 이집트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미라가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돈과 신분에 따라 미라 제작 방식과 장례 절차의 수준이 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붕대에 감긴 미라는 이집트 미라의 한 형태일 뿐이고, 실제 시대와 신분에 따라 모습이 상당이 다양하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은 불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불멸을 향한 이집트인들의 믿음은 사막보다 깊었고 나일강처럼 끝없이 흘러간다. 미라 초상화는 파이윰 미라 초상화로 알려진 예술 양식은 서기 1세기에서 4세기 사이 이집트에서 제작되었다. 대부분 파이윰에서 발견되었지만 이집트 여러 등지에서 발견되기에 학계에서는 미라 초상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초상화를 보면 남성은 여성보다 피부색이 어둡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종의 예술적 관습이었는데 남성들이 여성보다 밖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은 특히 유행에 민감하여 로마 황후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경우도 많았고, 당시 발행된 동전이나 보석에 새겨진 황제와 황후의 모습을 보고 유행을 알았을 것이다. 미라 초상화 속 아이들의 모습에서 여자아이들은 장신구를 착용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다음 세상에서 성인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아이는 펜던트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아이처럼 짧은 포니테일을 하기도 했다. 초상화들로 유추해 보면, 장신구는 단순히 멋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결혼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한 로마 군인의 편지를 보면 고립된 오아시스 생활을 끝내고 휴가를 기대하는 애처로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고된 삶과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집트 미라 초상>에서는 이집트의 초상화로 당시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