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무 애쓰지 말아요." 이 책을 덮고 나니, 이 말이 계속 생각났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놔도 된다는 위로처럼 느꼈기 때문일까? 『너니까 하는 거야 함께 간다 끝까지』는 저자가 휠체어를 탄 선생님과 함께 약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기록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약 400 킬로미터니까 왕복 거리를 걸은 셈이다. 카미노(Camino de Santiago)는 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인데, 산티아고로 가는 모든 길을 말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자는 그중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길로 간다. 생장(생장피에드포르 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는데 계단 때문에 출발부터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저자의 닉네임은 바다 해(海), 물결 랑(浪)의 해랑이다. 책 속에서 저자를 '해랑'이라고 불러서 찾아봤다. 낮은 곳까지 자유롭게 흐르는 바다의 물결처럼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각 장의 시작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 문양이 있다. 비에이라(Vieira, 산티아고 조개)라고 하는데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순례자들은 부엔 카미노((Buen Camino, 당신의 여정에 행운이 있길)라는 인사를 나누며 순례길을 걷는다.
“휠체어를 탄 분과 함께 800km를 걷는다고? 렌트카도 아니고?”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나도 아주 친한 친구와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많이 싸웠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그것도 한쪽은 휠체어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중간에서 싸우고 끝나지 않을까 싶었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된 책이다.
👨🦽🚶♂️함께 걷는다는 것
p.390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별의 장면이 아니라 함께 지나온 시간을 잃지 않으려 먼 길을 걷는다.
저자는 걸음에서도 관계에서도 같은 속도를 기대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어긋나는지를 깨닫게 된다. 서툴고, 서로 어긋나고,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것은 함께 걸어오면서 생긴 흔적이었다. 이 책은 단순한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기록이 아니다. 저자는 상대방을 선생님이라 부르다가 형님으로 부르게 되고, 결국 형이자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호칭의 변화는 마음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결국 이 여행의 목적은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었을까? 함께란 곁에 있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고, 말이 없어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자리를 말한다.
p.130 함께는 한 사람이 더 버티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시야 밖으로 보내지 않은 채 같은 시간을 건너는 일이었다.
진짜 강함은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함께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해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었던 기준을 내려놓는 게 더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밥은 함께 먹고, 답장은 빨리해야 하며, 힘들면 말로 표현해야 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 방식일 뿐이었다. 저자는 형님을 저자의 틀에 맞추려 하지 않고, 그냥 형님일 수 있게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두려면, 나도 먼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벽이었는지 모르겠다. 불편해도 괜찮다며 웃었고, 상처받거나 화나도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이 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800km를 함께 걸으며 어긋나고, 버티고, 조금씩 닮아가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p.409 사랑은 이해보다 머묾이었다. 상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함께 버틴 시간 속에서 결이 닮아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속도를 조금씩 몸에 익히며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는 상대의 방식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두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껏 성격이 잘 맞아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잘 맞아서 함께하는 게 아니라, 안 맞아도 끝까지 같이 있어주는 것이 진짜 관계라고 한다. 그 말은 바로 옆에서 증명됐다. 남편은 TV를 켜놓아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말을 걸어도 화면에 눈이 가 있는 남편을 보며 나는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계속 귀를 기울여 달라고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내버려두니, 가끔은 내 말에 조금이지만 귀를 기울여 주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를 내려놓으니 남편도 편했나 보다.
p.449 도전은 거창하지 않았다 오늘의 한 걸음을 내려놓지 않는 일, 그 반복뿐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오늘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에 성공했다. 이 책의 마지막 사진이 기억난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휠체어 때문에 형님이 들어가지 못하자, 저자도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누워 완주를 자축하는 사진이다. 끝까지 같은 자리에 있어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함께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p.451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 기록이 누군가의 하루에 잠시 숨을 고를 틈을 남길 수 있다면, 그 길은 설명되지 않아도 이미 거기 남아있을 것이다.
"고맙다, 네 덕분이다." 그리고 이 말 뒤에 “너무 애쓰지 말아요.”도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이 말하는 완주는 더 애쓰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걸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더 잘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괜찮다고 말해 준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 한 걸음이면 충분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