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광고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다.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나 자신을 광고하는 중이다. 서평은 이 책과 나를 동시에 광고하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폰을 켜면 광고를 피할 수 없다. 버스나 지하철 광고, TV를 볼 때도 광고, 길거리에 늘어선 간판도 광고다. OTT나 유튜브를 볼 때도 게임을 할 때도 광고가 나온다.
이지행 저자는 20년 이상 광고계 일을 해 온 B급 인문학자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광고는 기다려지거나 꼭 보고 싶지 않다. 그런 광고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어떻게 광고로 인문학을 이야기하겠다는 걸까?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광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학에 나타난 광고 이야기였다. 광고로 다가가는 인문학 이야기인데 아무 데나 읽어도 재밌다.
그래서 이 책은 서평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야기가 재밌어서 빠져들다 보니 내가 쓸 말을 까먹었다. 내가 생각해 낸 이 책을 읽는 팁은 이야기 하나를 읽고 짧은 감상을 책에 메모하거나 따로 메모해 가며 읽는 것이다. 그래야 스토리와 나의 생각이 매칭되고 기억이 더 잘 된다.
A급 광고와 B급 광고의 차이는 무엇일까? A급 광고는 높은 퀄리티와 감동을 주는 반면, B급 광고는 황당하거나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해서 소비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적은 비용으로 높은 광고 효과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간단하게 B급 광고는 사람 냄새 나는 광고라고 정의하고 싶다.
만약 이 책을 A 급으로 광고한다고 생각해 보자. '가장 날카로운 인문학적 통찰은 때때로 가장 익살스러운 가면을 쓴다.' <B급 광고 인문학>의 이미지를 A급으로 정말 멋있게 표현하지 않았나? 하지만 별로 정은 안 간다. 솔직히 멋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인생의 해답, 광고의 해답은 이 책에 있다! 나도 모르게 읽다 보면 은근히 지식을 쌓아주는 맛이 있다! 묘하게 빠져든다! 시간 순삭 보장!'
좀 촌시렵긴 해도 어쩐지 이 책이 뭔가 지식도 쌓게 해 주고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이 책의 B급 광고를 만들어 본 건데, 엉성하고 투박하다. 그래도 좀 귀엽? 이 책은 이렇게 거칠고 솔직한 B 컷의 연속이다. 특히 저자의 말투도 파격적이고 친근하고 재밌다.
광고란 무엇일까? 저자의 정의를 그대로 가져와 봤다. 광고는 구. 라. 다. 도덕적이지 않다. 온갖 구라로 더 잘 팔리게 해야 한다. 을 중의 을인 광고인들은 왜 죽을 만큼 힘든 광고일을 할까? 광고는 간. 지. 다. 폼 나기 때문이다.
구라와 간지는 옛날부터 쓰던 말인데 광고계에서 쓰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유래를 한 번 찾아보았다. 구라는 일본어 '구라마스(晦ます, 숨기다, 속이다)' 에서 왔다. 도박판에서 속임수를 쓰는 은어로 사용되다가 거짓말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다. 간지 역시 일본어 '간지(感じ, 느낌, 감각, 인상)'에서 유래했는데 한국에서 속어로 멋있다, 스타일리시하다, 폼 난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구라지만 폼 나서 광고를 한다. 그리고 광고는 사람을 향한다. 사람에게 진심이다. 사람을 향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관심이 많은 것이 광고인이다. 사람을 잘 알아야 팔리는 광고를 만들 수 있고 밥벌이도 되기 때문이다. 인류의 시작은 광고와 함께 했다. 광고의 출발은 인문이다.
인문(人文)은 또 뭘까? 한때 인문학 붐이 일었었다. 그때 나는 인문학이란 종교, 철학, 문학 같은 분야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과 문과할 때 문과 쪽. 인은 인간이고 문은 문학인가? 하며 넘어갔다. 뜻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알아보니 문학은 물론이고 종교, 철학, 예술, 역사, 윤리, 풍습, 법과 제도와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모든 아름다운 흔적들을 말하는 개념이었다. 문양(文樣, 무늬). 그래서 인문이란 인간의 문양이다. 사람의 무늬.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것을 포괄하는 것.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래서 저자는 광고인의 시선으로 인문을 이야기한다. 광고인은 연구가가 아니라 실용가다.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들이 탁월한 퍼스널 브렌딩과 마케팅의 대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아이를 학대하지 말라! 커서 히틀러처럼 된다"고 경고하는데 A급 같진 않지만 바로 기억되어 버린다. 이 책은 광고와 사람과 인간성에 관한 B급 보고서이기 때문일까? 고흐와 압생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고흐의 동생이 죽자 먹고살기 힘들어진 동생 와이프가 생계를 위해 고흐를 유명하게 만든 찐 광고인 이었다는 사신도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A급처럼 멋있고 간지나고 완벽한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B급의 허점투성이 인간에 관한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공감이 가고 기억이 잘 된다. 나도 체 게바라 책과 굿즈를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유명해졌는지 확 이해가 된다. "나는 해방가가 아니다. 해방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은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너무 멋있는 체 게바라의 명언중 하나다. 나는 그가 쿠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 금수저였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 대학을 나왔다. 게다가 쿠바가 아닌 볼리비아에서 죽었다. 3차 대전이 일어날 뻔했다는 썰도 있었다.
옛날에 마네와 모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엄청 헷갈린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우리말 사전 찾는 순서대로다. '마'가 '모'보다 먼저 나오니까 마네가 먼저다. 저자는 마네와 모네의 이야기를 하면서 모네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은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지만 모네는 장수를 해서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B급이라 무시당하며 수십 년간 모욕과 조롱을 당하던 이들이 인상파 화가들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모네는 B급 전성시대에 별이 되었다. 이렇게 별이 되려면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법이다. 만고의 진리이자 광고의 진리다.
브랜드 연상(Brand Association)은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 느낌, 이미지를 말한다. 코카콜라 하면 빨간색, 빨간 옷 하면 산타클로스, 이집트 하면 미라와 피라미드가 연상된다. 나는 루이비통, 구찌,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나이키와 필라, K2, 폴로 경기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마크로 만든 폴로셔츠가 생각났다. 루이비통은 짝퉁 가방을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봐서 진품이 백화점에 있는 것을 보고 "가짜랑 똑같은데?"라는 이상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은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샤넬 향수 이야기를 가져와 봤다. 샤넬 마크는 C자 2개를 하나만 방향을 바꾸어 겹친 것이다. 옛날에는 '샤넬 넘버 5' 향수가 아주 유명했다. N˚5에서 N은 넘버이고 가운데 있는 작은 동그라미는 프랑스어 숫자에서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의 약자다. 코코 샤넬이 선택한 5번째 향수 샘플이라는 설도 있고, 코코 샤넬의 행운의 숫자인 5를 의미한다는 설도 있다.
이 CC 상표의 대선배는 알브레히트 뒤러다. 뒤러는 '기도하는 손'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작품에 이니셜인 A와 D를 디자인한 모노그램을 사인으로 넣었다. 루이비통의 LV나 구찌의 창립자 구초 구치의 약자인 GG처럼. 저자는 500년 전 사람인 뒤러가 '내가 바로 명품 그 잡채'라고 말하는 듯하다고 이야기한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 AD는 광고라는 뜻이기도 한데, 뒤러는 뼛속까지 광고인이었던 화가라고 평한다.
나는 CC가 코코의 약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코코 샤넬의 약자였다. 코코는 샤넬의 애칭이다. 샤넬의 본명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다. 비욘세의 본명이 비욘세 지젤 놀스 카터인데 비욘세라고 부르듯 별명인 코코와 이름을 함께 부른 것. 그녀의 엄마는 일찍 죽고, 아버지에게는 버림받았다. 아픈 상처를 딛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샤넬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좋은 사장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유명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사람 이야기를 광고와 연결시켜 재밌게 풀어준다. 글자로 전하는 쇼츠 느낌?
인문학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내 생각을 속 시원하게 깨 부셔준 책이었다. 후방 주의, 언더독, 자바 헛, 어그로, 디스, 병맛, 트랜드 세터, 좋댓구알 같은 단어의 뜻도 찾아보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졌던 책 읽기, 즐거운 광고 인문학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