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인경님의 서재
  •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
  • 박지형(크리스)
  • 16,020원 (10%890)
  • 2025-04-14
  • : 720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보고 죽는 편이 나았다. 운이 좋으면 더 살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다니. 저자는 자신의 인생을 운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말기 암이라는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판정을 받고도 낙담하고 불평하는 대신 처음으로 웨이크 서핑을 배우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4기 암 환자의 웨이크 서핑 도전기라고까지 부르고 싶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한 사람입니다>라는 제목 그대로 저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이후 10년 이상을 강하게 살아남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살아남기에 충분히 강하다. 다만 누워서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할 뿐. 저자의 영어 이름은 크리스다. 가평에 있는 크리스 월드 대표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는 절대로 누워서 죽지는 않겠다며 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에게 그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10년 차 희망의 증거가 된다. 앞으로 10년을 더 살면 20년 차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책 표지에는 파란색으로 <After 10 years>라고 새겨져 있다. 제발 딸아이가 태어나는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그 후로 10년을 살았다. 이제 10년만 더 살면 딸아이의 결혼하는 모습도 볼 수 있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미래에 이 책의 2권이 나오길 꿈꾸어 본다. 3자릿수 항암 치료와 몇 번의 수술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꼭 딸아이를 보겠다는 염원 하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1000 페이지가 넘는 진료 기록은 힘겨운 투병 생활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너무 늦었다"라는 절망적인 독백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열어봤는데 원발암(Primary cancer)이 위(胃)를 뚫고 나와 있다. 파종된 씨처럼 복막과 몸 곳곳에 전이되어 있다. 원발암이란 암세포가 처음 발생한 부위의 암이다. 2014년, 저자는 혈액 종양내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사형 선고를 받는다.

항암을 안 하면 6개월 항암을 하면 1년의 중앙 생존기간이 예상된다고 했다. 중앙 생존기간(median survival time)이란 전체 환자의 절반이 생존하는 기간이다. 전체 환자 중 절반이 특정 시점까지 생존하고 나머지 절반은 그 이전에 사망한다. 중앙 생존기간이 1년이라는 말은 이 암을 진단받은 환자 중 절반은 진단 후 1년까지 생존했다는 뜻이다.

평균 생존기간은 너무 오래 살았거나 너무 일찍 사망한 극단적인 값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중앙 생존기간은 환자들의 생존기간을 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가장 중앙에 위치한 값이기 때문에 같은 환자 중 절반이 생존하는 시점이라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콧줄 이름도 알았다. 이비인후과 할 때 이비는 귀(耳)와 코(鼻)를 말한다. 콧줄은 코(鼻,비)에서부터 위까지 삽입하는 튜브다. 그래서 비위관(鼻胃管)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마도 암 환자이거나, 암 환자의 가족이거나, 혹은 암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어떤 이들일 것이다. 아니면 암과는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떤 독자이든 이 책을 통해 암이라는 병으로부터 얻게 되는 삶의 다양한 관점들을 획득할 수 있길 바란다. 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만약 나처럼 살게 된다면 물리적인 시간 자체를 훨씬 밀도 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암 환자도 장애 등급이 있나? 없다. 암 환자에게는 장애 등급이 부여되지 않는다. 병과 장애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병을 얻었지만 이것이 장애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기 암 환자라는 말이 좀 부정적으로 들렸다고 한다. 특히 환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느낌을 추기 때문에 4기 전이암 환자로 고쳐 쓰자고 제안한다. 말기라는 워딩이 주는 끝이라는 뉘앙스는 있던 힘마저 빼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암 환자들의 루틴은 대부분 비슷하다. 암에 걸리면 가장 먼저 하던 것들을 모두 멈추고 투병 생활을 한다면서 가족 등 타인에게 의존한다. TV에서도 보면 암 환자 하면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선택지를 하나 더 추가했다. 굳이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암을 치유하기 위해 속세를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 투병하는 사람도 있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 기도로 암에서 낫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저자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병원 치료와 병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암 환자라는 고정 관념을 통쾌하게 깨 주셨다.

저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누워서 보낸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한다.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되 그 외의 시간은 움직이고 싶었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왔냐며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계속 누워만 있게 되면 누워있지 않으면 불편해진다. 그런 무기력에서 오는 불편함을 살아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이듬해부터 저자는 웨이크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웨이크(wake)는 보트가 지나가면서 만드는 물결이다. 파도가 웨이브니까 발음이 비슷해서 금방 외워졌다. TV에서 보았던 보트 꽁무니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잡고 웨이크 보드로 파도타기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너지 소모가 큰 격렬한 운동이지만 물에서 하는 운동이라 다칠 일은 없다. 나중에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은 기본으로 탔다. 당시에는 완전히 웨이크 서핑에 미쳐서 결국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전국 대회에서 우승까지 해버렸다.

그저 그런 하루, 그저 그런 한 달, 그저 그런 일 년이 모여서 그저 그런 사람을 만든다. 흔히 말하는 성공과 실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를 도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으면서도 충분한 시간이다. 내가 바라던 결과를 얻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은 아닐지라도 도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그저 그런 날들로 채워가기 싫어서 항암 치료를 받으며 시작한 웨이크 서핑. 게다가 2년 만에 전국 대회 우승이라니! 병마와 싸워서 이겨내는 모습에, 사람이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튜브에 크리스 월드라는 채널이 있다. 들어가 봤더니, 다양한 스포츠는 물론이고,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위하여 정기 모임도 갖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로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도 크리스 월드에 가서 웨이크 서핑 🏄‍♀️ 배우고 싶다. 처음에는 보트 옆에 있는 봉을 잡고 물 위에서 일어서기부터 배우는데 너무 신나고 재밌어 보인다. 있던 병도 싹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저자가 전국 대회 우승까지 한 것이 아닐까. 웨이크 서핑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무한한 즐거움과 생명력이 느껴졌다.

이제는 넘버 원이나 온리 원이나 별 의미가 없어졌다. 오직 스페셜 원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사업가들이 똑똑해진 만큼 소비자들도 똑똑해졌다. 특별한 무언가가 없으면 그만큼 경쟁하기 힘든 시대다. 이 특별함을 기저에 깔고 맛이든 품질이든 가격이든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그래서 가평 빠지인 크리스 월드에는 대형 워터파크도 있고, 제트보트도 있고, 웨이크 서핑까지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다. 블로그를 검색해서 리뷰만 읽는데도 마치 내가 웨이크 서핑을 하는 것처럼 너무 신난다.

빠지는 수상 레저를 즐기는 곳이다. 나는 원래 바지(barge) 선이 뭔지도 몰랐다. 알고 보니 물 위에 뜬 대형 판자가 바지선이다. 동력이 없어서 다른 배(예인선)가 끌어줘야 한다. 동력이 없으면 그냥 물에 뜬 판때기에 불과하다.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플라이피시, 웨이크 서핑 모두 누가 끌어줘야 한다. 그래서 예인선이 꼭 필요한 바지선에 비유해서 빠지라고 한다. 바지 사장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굴마담에 불과한 사장이라서 진짜 사장이 끌어줘야 하니까?

적성에 맞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는 있다. 하지만 롱런하기 힘들뿐더러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엉뚱한 땅을 파면서 마치 성실하게 삶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며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한 우물만 파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

저자 역시 웨이크 서핑을 즐기며 암을 이겨냈지 않았는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제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넘어,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지, 나의 강점은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며 노력하자.

암이라는 것은 외국에서는 감기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어차피 우리는 결국 모두 죽는다. 그 시기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지만 저자처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하면서 일도 하고 운동도 병행한다면, 4기 전이암도 이겨낼 수 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