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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님의 서재
  • 유럽에 서 봄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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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1
  • : 114

♥ 작가님께 직접 책을 선물받아 감사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목적은 떠나는 것이었지만 기억은 부자가 되고 정서는 평원이 되어 새로운 유전자를 품고 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활자를 하나도 읽지 않고 사진만 보아도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스위스의 눈 덮인 산과 깨끗한 공기, 파란 하늘, 넓은 초원, 아기자기한 그림 같은 작은 마을, 맑은 계곡, 안개 낀 호수 풍경, 이슬 머금은 이름 모를 꽃🌼

아파트 숲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 비록 진짜 스위스의 맑은 공기는 맡을 수 없고 진짜 눈과 나무를 만질 수는 없더라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저자가 사진을 찍은 장소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저자의 첫 번째 책과 세 번째 책인 남프랑스 편을 먼저 읽었다. 그런데 저자가 이렇게 감탄을 연발한 책은 이 책이 으뜸이다. 다른 책들도 감탄이 쏟아졌지만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웅장함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풍경에 압도당하는 감탄은 처음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모험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장면, 광경을 들이마시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빛, 보고 있으나 믿을 수 없고 느끼고 있으나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가이드북을 의지해 온갖 상상으로 기대를 키워왔으나 결과는 처음의 기대를 수십 배 증폭한 폭발적인 것이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것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이런 찬사들이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에 홀린 듯 빙하를 감탄하며 뒷걸음질하다가 다른 여행객의 발을 밟았다고 한다. 저자는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하며 당황했는데 오히려 그가 미안해한다. 저자의 감상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미안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저자는 스위스에서 이렇게 눈부시게 행복한 순간들을 엮어 나간다.

마음에 담아 올 수밖에 없을 만큼 사진은 무력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뮈렌 에서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 행복감에 날아오를 것 같은 길을 걸으며, 온 마을에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배경을 가진 마을 길. 한 장면 한 장면을 꼼꼼히 담았다.

여행 작가님이라 그런지 표현도 남다르다. 이곳의 시간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듯 선선한 풍경과 한가한 구름이 모두를 쉬어 가게 한다. 나는 눈이 멀어도 괜찮을 것 같은 호기로 알프스의 태양을 마주하고 걸었다. 알프스에서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어도 두렵지 않다. 숨을 쉬고 걸어가는 그 순간이 바로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순간이 목적이 된다는 표현이 너무 멋있다!

스위스에서는 대부분의 분수물을 마셔도 된다. 먼지도 들어가고 더러울 것 같은데 그냥 물병에 물을 받아 마시면 된다는 것이다. 마치 약수터 같은 느낌? 게다가 빙하특급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특급 열차에서 찍은 알프스 사진은 어떤 화가의 작품보다 아름다웠다. 스위스에서는 공용어가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 3개라고 한다. 취리히에서는 독어를 쓰고 제네바와 같은 남쪽은 불어를 쓴다.

체르마트(Zermatt)의 카사 바네사(Casa Vanessa) 호텔에서의 풍경 역시 저자가 왜 제2의 집이라고 극찬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는 통창을 내면 여기저기가 다 아파트 뷰라서 민망스러워서 못 내는데, 통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 뷰가 한강뷰 저리 가라다. 길거리에 초록 초록 잔디도 너무 싱그럽다.

경주 갔을 때 전통 한옥 스타일의 맥도날드를 본 적이 있는데, 체르마트에 있는 스위스 스타일의 전통 맥도날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맥도날드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전통을 살리나 보다. 어쩌면 거리 사진에 쓰레기 하나가 없을까? 동네가 수목원 같고, 화원 같다. 청정 그 자체!

몽트뢰(Montreux)라는 곳은 처음 들어봤다. 그런데 레만 호수는 어디서 들어 본 듯하다. 레만 호수 산책길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동상이 있다. 소중하고 열정적이며 고귀한 시간들이 혼자만의 시간이며 살아온 날들의 보상이라는 저자의 말이 유난히 와닿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니 혼자 있을 때가 더 행복해진다.

장크트 갈렌(St. Gallen, 독 Sankt Gallen)은 처음 들어보는데, 강아지에게 물 주는 할아버지 때문에 알게 된 곳이다. 식수대 앞에 강아지가 목이 말라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전화하면서 물을 떠먹이고 있는 사진이 찍힌 것이다. 이런 장면을 찍은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도 아름다웠던 장크트 갈렌이었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 1530년에 완성된 천문시계인 치트글로게(Zytglogge)는 매시 4분 전이면 인형이 움직이고 곰이 나타난다고 한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고 인형이 망치로 종을 두드리는 광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와 기다린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이 지구에 다녀가는 찬란한 시간을 감사히 느끼며 함께한 모두에게 고마움을 알리는 석양의 시간이 왔다는 저자의 표현도 시처럼 아름답다. 감사를 느끼는 지구에서의 찬란한 시간이야말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오늘도 새로운 별에 다녀온 듯 충만함을 가슴에 넣어 온다고 하신 작가님은 지금은 또 어떤 새로운 별에서 어떤 새로운 반짝임을 줍고 계실까? 앞으로 스위스 베른의 천문시계 치트클로제 사진을 보면, 죽음은 틈을 빠져나온 순간, 비로소 만나게 되는 하늘과 같다는 어린 왕자에서 나올법한 작가님의 말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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