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여행기라고 생각했다면 절반은 오해이며 절반은 그렇지 않다. 섬세하고 발바닥이 말랑말랑한 저자는 '맨발로 포도알을 밟듯' 자신이 디디고 걸었던 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의 여행은 책장을 넘기면서 곧 '나의 여행'이 된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기록'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비추어본 '꿈'을 기록했다. 이 책은 리스본과 양곤과 런던의 큐 가든과 그라나다의 낯설고 풍만한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건져올린 꿈은 그 땅의 현실을 왜곡없이 반사하고, 읽는 이의 몸과 마음을 그 반사된 거울 무늬에 재차 투영하도록 이끈다. 그 거울에는 저자도 있고 책을 읽는 '나'도 있다. 이 예상치못한 겹겹의 거울놀이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소중한 예행연습이 될 것이지만 '여행을 떠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실전의 여행이 될 것이다. 그동안 어떤 여행기를 읽든 혹시 허전했다면 그 안에서 '나를 비추어볼 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산더미같은 여행 정보서와 인터넷 서핑 자료를 쌓아놓고도 정작 '왜 떠나는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마지막 허전한 회의를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그러기에 충분한 '친절한 틈'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