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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나님의 서재
  • 모멸감
  • 김찬호
  • 15,300원 (10%850)
  • 2014-03-19
  • : 6,309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프랑스 식민 지배 하의 알제리 원주민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부정하고 지배자들과 동일시하는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자신이 검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면서 백인의 정체성을 취하는 것이다. 자신이 배치되어 있는 사회적 위치를 받아들이기 괴로운 상황에서 생겨나는 일종의 허위의식이다. 그러한 환상은 피차별 집단에게서 종종 나타난다. 그 결과 자신들이 당하는 억압의 구조를 보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쏜다. 그의 다른 책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주민이나 경찰은 언제나 원주민에게 매질을 하고 모욕을 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원주민이 품속의 칼을 빼는 것은 다른 원주민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인 행동을 하거나 공격적인 눈길을 보냈을 경우다. 원주민에게 최후의 수단은 형제를 상대로 자신의 인격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기가 당면한 현실이나 일상의 경험에 눈을 닫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그러는 동안 부조리한 구조와 억압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심각한 결과는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통해서 자기의 객관적인 모습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콤플렉스의 핵심 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러한 개별화다. 저마다 골방에 갇혀 지내면서 마음을 열지 않는다. 힘을 모아서 세상의 잘못된 점들을 바꿔갈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요원해진다. 삶의 힘을 키워내는 문화도 박약해진다. 예를 들어 어느 전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축제를 하지 않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원래 공고는 그런 거 안 해요. 그 짓도 소속감이 있어야 하죠. 학교 축제 안 한지도 2년 됐거든요."
앞서 인용한 글에서 로버트 풀러가 말한 노바디nobody(사회적으로 별 볼 일 없게 여겨지는 사람)의 특성을 짚어내고 있다. 수치심 때문에 자아를 숨기고 더 나아가서 상대방을 학대하기까지 한다. 남에게서 받은 경멸을, 남을 학대함으로써 보상받으려 한다. 유명인에 대한 험담과 악플이 극심해지는 것은 사회 전반에 열패감이 만연해 있다는 반등일 수 있다. 누군가의 약점을 들춰냄으로써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젖어든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착각이며, 그럴수록 점점 무력해지고 모멸감에 더욱 취약해진다.
부당한 일을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생겨난다.
- P243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자기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다. 현실의 조건에 발이 묶여 있거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자기 안에 있는 열정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나 사회가 부여한 편견에 의해서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가둬두기도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그 굴레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다. 내가 보지 못했던 재능을 상대방의 눈으로 발견하게 되고, 삶을 나누는 가운데 새로운 꿈의 씨앗이 뿌려진다.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싹을 틔운다.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두 사람만의 관계로는 한계가 많다. 다양한 시너지가 일어나고 변화가 안정적으로 지속되려면, 선에서 면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적인 만남에서 공적인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사로운 삶의 공간에서 친밀감과 평온함을 누리지만, 그것을 넘어선 공공의 세계에서 자기의 존재 가능성을 확대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공동의 경험과 공적인 서사(내러티브)를 창출하면서 더욱 고양된 자아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정현종, <섬>)라는 시구처럼 너와 나를 넘어선 세계를 지향할 때 내면의 부피가 커질 수 있다. 그 섬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아를 조망할 수 있다. 일인칭과 이인칭의 배타적인 긴장에서 풀려나 삼인칭의 시선으로 각자를 되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P255
1937년 네루다는 칠레의 산티아고 중앙시장 짐꾼들 앞에서 연설 대신 시집 한 권을 낭송했다. 그때 지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철저하게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이렇게 크게 감동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주저앉아 울었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에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P258
언제부터인가 힐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치유는 단순히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 살아 있음을 축복하면서 존재를 중심으로 맞아들이는 만남에서 우리의 생애는 고귀해진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관계에서만 인간적 존엄을 누릴 수 있다. 샘 킨 Sam Keen 이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열린 마음과 가슴으로 듣는 신뢰할 만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들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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