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라는 영국학자는 다윈이 생물 진화의 원리로 제시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개념으로 바꿉니다. 자연선택이란 ‘자연이 여러 변이를 지닌 생물 가운데 특정한 개체를 선택한다’라는 뜻이고, 적자생존이란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이지요. 자연을 주체로 하면 자연선택이고, 생물을 주체로 하면 적자생존입니다.
스펜서는 이 적자생존의 원리를 인간 사회에 적용합니다. 생물 세계에서도 가장 잘 적응한 녀석이 살아남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잘 적응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 단, 스펜서에게 ‘가장 잘 적응한 자’는 ‘가장 우월한 자’입니다. 스펜서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사회에서도 발현되면 인간 사회가 끝없이 진보하는 것은 물론, 부적응자가 자연스럽게 도태하고 우월한 인간만 남는 행복한 미래가 열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한다는 ‘우승열패’,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이로 삼는다는 ‘약육강식’ 등이 스펜서의 세계에서 당연해집니다.
스펜서식 적자생존에서의 ‘적자’는 부자와 권력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열등하다고 여겼습니다. 스펜서는 사회를 자연과 비슷한 상태로 놔두어야 한다고도 믿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적자가 살아남아 진화하는 것처럼, 사회도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둘 때 가장 빨리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스펜서로부터,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지배해야 사회가 진보한다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그렇게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도덕적인 부담을 덜어 냅니다. 더 우월한 자를 낳아 기르고 나머지를 도태시키는 것이 인류발전에 이롭다는 ‘우생학’도,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여 번성하는 것이 사회진화의 법칙이라는 ‘인종주의’도 모두 사회적 다윈주의(사회진화론)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일본이 큰 죄의식 없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다 건너 동아시아까지 넘어온 이 이론 덕분이었습니다. 조선의 지식인들마저 사회 진화론에 젖어 들어서 일본의 지배를 역사의 필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진화론 오독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윈이 생각한 적자는 가장 강한 자가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입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는 생물학적 진화가 사다리를 밟고 ‘위로’ 올라가는 과정, 즉 진보와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윈이 묘사한 진화의 모습은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넓게 가지를 뻗는 나무’입니다.- P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