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을 창피해서 감추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지현의 태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더욱이 지현 나이 또래의 친구들 중 빈곤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태도였을 것이다. 가난을 증명하는 글을 써서 장학금을 받는 일이 왜 부끄럽지 않은가. 왜 저렇게 당당하며 가난이 자신의 강점으로 둔갑하는가.
나는 지현이 긍정적으로 살아오며 빈곤을ㄹ 극복한 진짜 힘이 여기에 있다고 보았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일 뿐이지, 내 잘못도 죄도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현은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가난에 대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시선에 맞서 싸우는 일이 버거웠을 뿐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지현의 전략이 영리하고 훌륭했던 것은 세상의 편견과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해나갔다는 점이다.- P82
낙인감을 얘기할 때 고려해야 할 것:
우리 사회에는 현재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한국사회의 공공영역 지출은 여전히 매우 적다.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을 도와주는 대부분의 인프라는 종교시설, 개인 독지가에 의한 사회복지시설, 사회단체 등이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이 많다 보니 ‘사회복지’는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시혜적’ 시선을 담아 도와준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구조는 빈곤층이 직접 ‘가난을 증명’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회 풍토를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한 존재이다. 사회 안에서 자신의 위신과 자존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정체감)이 삶에 필수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훼손하면서까지 경제적 도움을 얻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가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과 ‘도움 요청’은 자칫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성장하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이러한 행위가 교우관계나 자아정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계층, 어떤 연령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표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가 가난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특성도 한몫 거든다. 한국사회는 100년 가까운 근현대사 동안 독립과 내전, 산업 부흥을 겪어왔다. 국가라는 공적 시슽템이 약했기 때문에 그 격동기를 ‘가족-우리’라는 사적 공동체와 ‘우수한 인력 양성’으로 버텨온 내성이 있다. 덕분에 한국사회는 현재와 같은 경제대국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약자에 대한 공격, 과도한 경쟁체계, 승자독식에 관대한 사회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약한 개인의 문제이며, 개인이 게으르고 똑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이유가 여기에 있다.-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