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한양도성의 어느 기방과 보빙사의 집을 배경으로 한 팩션을 재미나게 읽었다. 고종이 미국에 파견한 보빙사의 일원으로 합류했었던 실존인물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남긴 조선 여인의 사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기생 계손향의 행적과 마음을 쭉 따라간다.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지만 쌍둥이 남동생의 병사 이후 미신을 믿는 아버지로부터 팔려가 기생의 길을 걷게 된 계손향과 미리견(미국)에서 온 호랑이라는 이름의 손님의 만남은 국빈과 그를 접대하는 기생의 관계를 넘어 조선말 선생과 학생을 지나 언어 교환, 그리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계손향이 여성이기에 겪는 여러 역경은 자연스레 페미니즘을 떠오르게 한다. 계손향뿐 아니라 그녀가 사진술을 배우는 향원당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받았던 것도 그렇고, 동아일보 사진반원이 되어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적은 삯을 받는 모습도 그렇다. 계손향의 동무 영월이 삼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당해 고문 끝에 숨진 장면은 고아성 주연의 <항거:유관순 이야기>의 김새벽 배우가 열연한 김향화 독립운동가를 떠오르게 한다.
전반적으로 이야기 속의 여러 이야기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바리공주 이야기 등을 인물의 상황과 사건 전개에 따라 잘 녹여낸 점이 훌륭한 작품이었다. 또 '소냐'로 하얼빈을 지나 유럽을 일주하고 미국까지도 가닿았을 계손향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