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서평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
#최은영 지음
#오승민 그림

그림책이지만 60쪽 분량으로 긴 편이다. 천사가 새겨진 머그컵 '안젤로'와 곤돌라 모양의 냉장고 자석 '곤돌라'는 여행을 추억하는 기념품으로 삶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한 기념품 상점에서 한국이 가정집까지 그리고 한국의 집에서 바닷가까지의 안젤로와 곤돌라의 기나긴 여행은 글을 읽는 나에게도 긴 여행을 선물했다.

여행 기념품은 처음에는 정감있게 사람들 가까이에 있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여행의 모든 기억을 과거의 추억 속으로 밀어넣고는 망각한다. 안젤로와 곤돌라는 그렇게 서랍 속으로 사라지고 결국엔 쓰레기통으로 가고 만다.

경제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생산되고 버려지는 수 많은 물건들 틈 중에서 하나에 불과한 쓰레기였지만 이 둘은 바다로 가겠다는 희망을 놓치 않고, 꿈을 꾸면서 여행을 지속한다.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몇 차례 부서진 컵 안젤로는 돌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가 된다. 플라스틱은 곤돌라는 바닷가에 들른 어린아이의 손에 들려서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을 경고하는 <환경 그림책>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돌이 되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삶과 플라스틱으로 영원히 사는 삶 중에서 어떤 것이 좋다고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이 둘의 삶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안젤로의 삶을 선택할 것 같기는 하다.
#비효율적 최은영 작가의 인터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작가의 일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요. 얼마나 비효율적이냐면, 저는 세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한 문단의 글도 못 끝내는 때가 많아요. 그 비효율이 저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을 안겨 주곤 했어요. 너무 무능한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불과 작년에야 깨달았어요. 그렇게 비효율적인 시간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일이라는 것을요."
그림책에서 안젤로는 바다에 가야 한다는 목표에 사로잡혀있는 곤돌라와는 대조적으로 봄을 느낀다. "정말 신기하지 않아? 매일매일 날씨도 다르고 공기도 달라. 나를 찾아오는 물건들도 다 다르고."
여름이 왔을 때 "뜨거운 여름 햇살. 정말 싫다."라고 말하는 곤돌라와는 대조적으로 안젤로는 말한다. "와, 나무가 정말 울창해! 여름은 참 아름다워."
가을이 왔을 때, "벌써 가을이야. 바다에 갈 수 있을까?"라고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아 조급해하는 곤돌라에게 안젤로는 "하늘이 참 파랗다. 바다도 저렇게 파란색이지?" 안젤로는 바다로 간다는 목표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비효율적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작가의 일인 것처럼 안젤로에게는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이 안젤로의 일인 것만 같다.

대부분 우리는 안젤로와 곤돌라가 바다로 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삶의 끝에서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막상 그 곳에 도달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고자 했던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안젤로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왔던 공기와 나무, 햇살을 환영했던 것처럼 살아가는 과정 내내 내게 오는 것들을 환영하면서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가 안젤로처럼 마지막에 편안함에 이르러 이런 고백을 하고 싶다. "곤돌라,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난 이제 편안해, 네가 옆에 있고, 바람은 향긋하고, 파도 소리가 들려. 꼭 고향에 온 것 같아...."
#최은영 작가님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