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 고색창연한 문체로 그려낸 김정호의 인생과 발자취.
알려진 바 없었던 그의 삶을 사실적 허구로 채운다.
(재미-중상, 난도-중하)
‘고산자古山子‘는 김정호의 호號다.
1973년에 등단한 소설가 박범신이 쓴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 김정호‘.
이 역사소설로 2009년 17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박범신의 대표작으로는 『은교』, 『소금』, 『촐라체』 등이 있다.
(줄거리) 전국을 돌아다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김정호에게 위기가 닥친다.
목판 재료를 구해다 주던 오랜 친우 ‘바우‘가 통덕랑 김성일 집안의 나무를 도둑질했다는 고변에 한성부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또 김정호의 집을 방문한 김성일은 김정호의 딸 순실이가 천주학의 상징인 십자가를 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찌저찌 일을 수습한 김정호는 화를 피함과 동시에 『대동지지』 제작을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창작) 김정호 개인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데, 작가의 상상력과 추론을 김정호 인생의 공백에 채워 넣어, 김정호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재창조한다.
김정호의 어린 시절, 딸의 존재, 지도 제작 과정 등을 고색창연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가 지도를 그리게 된 연유도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 지어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도가 사람들을 죽였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믿었다.
지도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양면성으로 작용한다. 지도가 없으면 사람의 오감이 부풀어오를 대로 올라 스스로 지도가 되지만, 지도가 있으면 지도를 믿기 때문에 오감은 만삭의 돼지처럼 그 운행이 느려진다. 엉터리 지도가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기 쉬운 것은 그 때문이다. (61~62쪽)
(추억여행) 3장까지는 김정호의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그의 고달팠던 삶을 되짚어본다.
의미 있던 지역을 다니며 과거를 회상하는 건, ‘김정호의 추억여행‘과 다를 바 없다.
각종 지도와 지리서를 편찬한 그의 업적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많다.
홍경래의 난 때문에 가족을 잃었던 과거, 개죽음 당한 아버지의 뒷이야기를 밝히고자 위험을 무릅쓴 사건, 떠돌이 생활과 그러면서 알게 된 혜련 스님 등 역사적 사건과 배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 그것이다.
김정호와 주변 인물들의 아픔과 슬픔, 고달픔은 느낄 수 있지만, ‘이런 스토리를 보려고 이 책을 펼친 게 아닌데‘라는 감상을 느끼기도 했다.
(하이라이트) 3장 초중반부에서는 역사적으로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를 다룬다.
난고 김병연(김삿갓)으로부터 시작된 대마도와 간도의 소유에 대한 토론으로 시작해서, 우산도(독도)가 김정호의 지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실제로도 분첩절첩식인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빠져있다..)
그리고 4장에서는 김정호의 ‘지도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연 이 소설의 백미다.
3장까지 쌓아 올렸던 인간관계에 실망하고, 질긴 악연도 다시 마주하게 된다.
˝묘허에겐…… 세상이 태평성대네그려.˝
고립무원의 상태로 딸 순실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중인 신분으로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전략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도 제작에만 헌신했던 김정호의 피나는 노력과 어려운 상황, 그리고 뼈아픈 후회에 감정이입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다.
(총평) 평소 접하기 어려운 고어와 한문으로 된 표현이 많아서, 독자에 따라 읽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의 매력과 분위기가 뚜렷한 역사인물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해도 좋을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감정적으로 요동치며 소설을 마무리 짓는 4장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좋은 평가를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활극이 없음에도 지루하다는 감상은 거의 없는 수작이니, 관심이 있다면 선뜻 추천해 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