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설명하듯 디자인한 표지 그림에 고양이는 없다.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다. 첫 장면에 따르면 고양이 올가가 그의 반려 가족과 그들이 사는 집을 소개하려는 모양이다. 모든 사물은 제품 카탈로그처럼 각각 배치되었다. 물건 그림들이 모인 장면을 정의하는 짧은 한 줄 글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주는 기능을 한다. 글은 상관없어 보이는 몇몇 물건들까지 그들 관계를 유추하게 만든다. 책 전체를 이끄는 고양이 올가의 서사가 있지만 그마저도 독자가 구성해야 한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읽기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우선 정갈하게 자리 잡은 그림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좋다.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등장하여 1920년대 예술에 적용되던 구성주의를 기억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념적인 이유로 1939년에 종식된 후 60년대 서유럽에서 재평가된 추상표현의 하나다. 1982년생 가이아 스텔라는 구성주의 예술가 나탈리 파랭과 블라디미르 레베데프로부터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한다. 실용성과 사회적 효용이라는 구성주의의 특징은 정보 전달을 위한 디자인에 효과적으로 발현된다. 가이아 스텔라의 방식은 조금 더 나아가 개별화한 사물들과 사람 사이를 잇는 장치로 고양이를 데려왔다. 장면마다 올가의 귀여운 흔적을 찾아 이야기를 이어가게 했다. 한 집안의 풍경을 고양이 올가의 시선과 입장에서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 올가를 다 못 찾은 독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양이가 되어 책을 넘겨보아도 좋겠다. 구성상 사실은 사람과 고양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려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람에게나 고양이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사물이 꽤 많기 때문이다.
판화기법으로 찍어낸 그림은 대상을 선명하게 복원하기보다 흐릿하거나 빛바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 준다. 판화는 잉크의 양에 따라 혹은 찍을 때 압력에 따라 모두 다른 그림이 된다. 집안을 구성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것은 누군가 짧거나 오래 써 온 물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 빛바랜 듯 시간이 보이는 판화가 잘 맞는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크고 작은 여러 나라를 병합한 소련의 구성주의가 더 잘 맞아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