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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어찔어찔 내려간다
긴 회랑의 늪을 타고 정신 없이
밑바닥에 고인 맑은 물
달빛과 풀벌레 울음과 이슬에 넘친 물
가을 밤에 물을 긷는 일은 행복하다

물통 속에 달이 뜨는 일은 행복하다
人共時代에 줄창 같은 아들 셋을 잃고
투신 자살한 귀덕할미 죽은 넋이 울 듯
도르래는 운다만
數世紀의 어둠 속에 고이고 고여서
솟아나는 한 모습의 물과
입 맞추는 일은 행복하다

물통 속에 기러기떼가 뜨는 일은 행복하다.

-「우물 긷기」 전문

송수권의 시가 전통서정시를 물려받고 있지만 그의 특별함은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있다. 그리고 그 사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내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 恨으로 머물지만 않고 힘을 획득하고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물 긷기」는 송수권의 시창작 태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시이다. 이 시에서 우물을 긷는 자는 시인 자신이다. 그리고 시인은 우물 안의 ‘數世紀의 어둠’을 길어 올려 입을 맞추는 행위를 너무도 행복하게 여긴다. 왜 이 시인에게 ‘數世紀의 어둠’과 만나는 일이 행복한 걸까? ‘數世紀의 어둠’으로 불리는 민중의 울음 소리가 시인에게 마음이 가는 요소이다. 송수권은 자신을 ‘뜨거운 핏줄을 밝히는’ ‘상놈의 피’가 흐르는 자(「燈 盞」), ‘여기서 나고 여기서 자라 죄 짓지 못한 착한 백성’(「回文里의 봄」)으로 인식하고 있다. 뼛속 깊이 민중인 송수권이 바라보는 것들 역시 마찬가지로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 탐관오리의 횡포로 옥에 있는 춘향이(「춘향이 생각」), 동학군으로 안핵사에게 혀를 뽑힌 장쇠아범(「茁浦마을 사람들」), 임금의 오해로 참살당한 사공 손돌(「겨울 江華行」), 그리고 ‘우리들의 잊혀진 고향’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3부 보름祭에서 연작되고 있는 보름祭에 행해지는 가랫불 넘기, 부럼 까기, 솟대놀이 등이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 그가 ‘數世紀의 어둠’라고 불리는 민중을 바라보는 것은 그 ‘數世紀의 어둠 속에 고이고 고여서 솟아나는 한 모습의 물’을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을 길어 올리는 일도 시인 자신의 몫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송수권이 길어 올린 ‘數世紀의 어둠 속에 고이고 고여서 솟아나는 한 모습의 물’이란 것은 무엇인가?

옛날, 할아버지 살던 茁浦마을은 그렇지, 한틀 지게를 엎어 놓으면 꼭 맞는 말일지도 몰라. 두 개의 山脈이 지게 목발처럼 내려 앉아서 지게 고작처럼 휘어들더니, 바다의 중동을 자르고, 애타게 만나질 듯 만나질듯 마주친 두 개의 지네 대궁지처럼 물 속에 자물리고 있더란다. 보름 사릿물이 오를 때쯤은 지네발로 두 대궁지가 달싹달싹 일어서는 것이 눈에 역력하더란다.
또 바다는 蓮꽃 시벙글어, 지듯, 風月導師의 손끝에서 떨어진 부채마냥 폈다 오물리면서 마치, 할아버지의 째진 말총갓 구멍으로 드나드는 겨울 호리바람처럼
피꺽피꺽 여러 마리 산새를 울리기도 하더란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들어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하옇든 산농민의 상놈의 도둑놈의 떠돌이의 반생으로, 동학군이 날개가 잘리면서 어느 안핵사에게 호되게 걸려, 혀를 뽑힌 채, 한 패거리들로 숨어와 터를 잡았더라는데 할아버지가 보기는 갈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근동에서는 씨종에서 씨文書를 가진 벙어리 쌍것들로 구메 혼인에도 가마에 흰 띠를 못 얹혔다지만, 그래도 귀 떨어진 葉錢 하나는 꼭꼭 때워 쓰는 착한 사람들이더라는 것이다.

한번은 읍내 장터거리 그 쇠전머리 윷판막의 말뚝을 뛰어 올라 반벙어리 장쇠아범이 혀를 집게로 뽑혀도 쌍놈의 말은 쌍놈의 씨로 남는 법이여. 그라믄 쓰간다. 그래도 우리 동학장이들이 바구미같이 바글바글 끓던 그때 그 장날이 멋이었당깨. 이러고서는 한참 외장을 놓더라는 것이다.
아 동헌 마루를 우지끈 부수고 알상투를 끌어내어 수염을 꼬시르고 깨를 벗긴 채 볼기를 쳐 三門밖으로 내쫓았더니 그래도 양반 때는 알았던지 옴팡진 씨암탉처럼 두 손으로 쇠불알을 끄슥드랑깨. 활텃거리에서 작것 竹槍 끝에 안 걸렸드랑가. 뚝 소리 내고 떨어졌당깨. 옴마. 그란디 한 여편네가 엎어지드니만, 옴마, 이 작것, 이 작것. 우리 딸니미 잡아 먹은 갓끈 딸린 이 작것 하드니만 치마푹에다 싸들고 줄행랑을 쳤드랑께. 혀는 뽑혀도 말은 바로 허지만 말이여. 내가 그 달딴 녀석 아닌가 말이여. 알긋써. 이러더니란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늘 조금때쯤 바다는 복날 개 혓바닥 빠지듯이 그 길게 뽑힌 혀를 두 지네 대궁지 사이로 밀어놓고는 혀 뽑힌 茁浦마을 사람들처럼 궁궁을을 궁궁을을 궁궁을을 맨날 이러더라는 것이다.

-「茁浦마을 사람들」전문

「茁浦마을 사람들」이 시는 언어 뿐 아니라 시 전체가 민중 삶의 힘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시이다. 시는 처음에 시의 화자인 할아버지의 茁浦마을을 살아있는 듯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두 산맥 사이 바다가 있고, 그 바다가 빠질 때는 갯벌이 있는 茁浦마을은 시의 시작부터 사내의 살에서 솟아 있는 힘줄처럼 생동하고 있다. 또한 茁浦는 역사적으로 동학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남도는 조선후기 우리나라 최대 쌀 생산지로 대지주의 봉건적 수탈이 다른 곳보다 심했고 또한 줄포는 강경, 법성포, 논산포와 함께 포구, 개항장으로 대일 미곡 수출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대일 미곡 수출로 득을 얻는 것은 가진 자들이었고 민중들은 더욱 핍박받고 가난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한 불평등에 저항했던 것이 바로 동학혁명이었다. 이 시에서는 이미 동학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난 뒤 그 벌로 ‘혀를 뽑힌’ 사람들이 茁浦에 살고 있다. 그들은 그 전보다 더욱 궁핍하고 핍박을 받고 있었겠지만 동학혁명은 장쇠아범 같은 궁핍한 삶을 사는 민중에게 그 삶을 이겨내는 신명을 주는 경험담, 모험담, 자랑거리가 된다. 기댈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민중들이 살아온 이 작은 힘이 바로 송수권이 민중에게서 발견하고 길어 올린 ‘數世紀의 어둠 속에 고이고 고여서 솟아나는 한 모습의 물’이다. 이 힘은 ‘늦가을 뜨거운 불을 뒤집어쓰고 목을 떨군 채/ 단근질’(「江」)하는 모습이며 끊임없는 삶의 줄넘기를 자꾸 넘게 하는 ‘아, 뿌리 속 알 수 없는 힘’(「줄넘기」)이다. 이 힘으로 민중은 ‘산이 제 골짜기로 깊어지면서 한 시대의 적막한 물소리’(「江」)를 만들어 내듯 ‘장대같이 살아 눈부시게’(「江」)흘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를 김현은 시인이 ‘한의 밑바닥에서 솟는 힘의 근원이 순전성’ 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송수권의 시가 恨으로 침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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