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묻어 흐르는 이야기들
kalavinkaa 2005/11/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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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묻어 흐르는 이야기들
김용택 시인에게 섬진강은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주는(「섬진강1」)공간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공간에서 민중들은 이름 없는 들풀과도 같이 숨죽여 살아가지만 섬진강만은 그들을 감싸 흘러간다. 그들의 삶을 보듬어 준다. 시집 ꡔ섬진강ꡕ에 흐르는 주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물 깊이 그리움을 심‘(「섬진강3」)는 누님이 있다. 누님이 기다리는 이는 표면적으로 ’그‘로 표현된다. 하지만 누님의 기다림은 세속적인 욕망의 기다림이 아니다. 나이 들어 누님이 가고, 누님의 기다림의 자리를 마주하게 된 화자는 말한다. 누님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바라봄‘이며 ’세월의 따뜻한 깊이‘로 깊어져갔던 섬진강의 다른 이름이다. 말없이 흐르는 그 섬진강의 깊이를 누님은 아픈 세월을 통해 얻었다. 이제 그 기다림의 자세를 살아있는 화자에게 전해준다. 화자는 그 기다림의 자세를 등불 삼아 살아간다.
기다림의 자세를 등불 삼아야 하는 누님의, 나의 아픈 세월은 뭘까? 만약 그의 시가 섬진강 시편에 정체모를 슬픔만을 담았다면 이것은 김용택의 시가 아닐 것이다. 섬진강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다른 서정시와 다름없는 시가 될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 그 전 세대부터 섬진강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시인의 섬진강 연작은 농민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한 시절 뼈 빠져라 지어 놓은 쌀은 똥값으로 팔리고, 더 이상 농촌에 사람들은 없다(「섬진강7」). 다시 돌아오는 자들은 중동에서 고생을 하고 돌아와도 남는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섬진강8」)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예전에는 다 제 몫을 해내던 사람들이다. 시「섬진강13」은 그러했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생긴 모양대로/이러저러한 이름이 생겨/사람들 살 비벼 살’던 곳. ‘질서가 걱정 없’이 정해지고,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를 돕던 곳. 농사 일이 다 끝나면 다들 모여 고됐던 몸을 추스렸던 곳. ‘일과 놀이에 구색이 맞아/자연스럽게 다 소용되는 삶들이니/ 다 사람 구실을 하고/서로서로 사람사람을 다 귀하게 여기니/동네방네 일에 아귀가 맞아/다 사람 대접을 받았’었던 곳. 80년대 모두가 외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던 곳이었음을 시인은 말해주고 있다. 다른 곳에서 민주주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공간인 농촌에서, 땅의 역사에서 이미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산업화,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가난한 자들만 떠도는, 이제 무덤 같은 공간이 되어버린 농촌. 그 곳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자들은 제 몫을 다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잊지 못하기에 더욱 서럽다. 「섬진강16」은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쓸쓸한 가슴을 앉고 살아가야 하는 현재 농촌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나 둘 씩 떠나고 비어가는 농촌, 남은 자는 그들이 살았던 자리가, 그들과 햇빛 궁그러지게 웃어대던 날들이 한없이 그립다. 누님의 아픈 세월과 그 세월을 넘겨받은 시적화자를 마주하며 우리는 그리움의 정서를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설움의 다른 이름이고, 기어코 전 세대에게 얻었던 땅의 교훈으로 살아내려는 자세이다. 이 시에서 그리움은 허공에 떠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설움을 지그시 삶의 바위로 누르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움직이는 정서이다. 이 정서는 섬진강처럼 끊임없이 반짝이며 흐르고 있다.
김용택의 시에서 나오는 농촌은 전에 읽었던 유하와 함민복의 시에서 나왔던 유년의 공간과는 다르다. 물론 그들의 삶의 장소와 자세에서부터 그들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대비로 김용택이 섬진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왜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지 알 수 있다. 그리움과 기다림, 깊이 바라봄의 자세를 누님에게 얻었던 화자가 바로 김용택이다. 시인은 기어코 땅을 믿으며, 땅을 믿는 사람들을 믿으며 살아가려는 것이다. 소외되어 가는 농촌은 점점 설움의 공간이 되어가지만 시인은 설움의 공감에서도 땅을 일구며, 빚으로 농사를 지어도 땅을 믿는 그 사람들이 있기에 결코 농촌을 단절, 소외의 공간으로 단정 짓지 않으려는 삶의 자세를 가지고 시를 쓰고 있다.
이러한 생생한 삶의 모습들을 그려내는 김용택은 사람이 사는 마을 주위를 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섬진강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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