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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서러움과 맑음의 강물

시집 ꡔ섬진강ꡕ에서 그리움 같은 서정성이 강했다면 시집 ꡔ맑은 날ꡕ은 분노가 시집 전반을 흐르고 있다. 이는 농촌의 현실과 맞물려 있는 감정이다. 농촌은 점점 노인과 아이들만 남는 공간이 되고 모두들 도시로 향한다. 이러한 상황을 김용택은 ꡔ맑은 날ꡕ에서 죽음으로 그려낸다. 「섬진강24」와 「섬진강25」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시다. 특히 「섬진강24」는 할머니의 죽음부터, 초상까지, 그리고 초상 뒤 남은 사람들의 모습까지 자세히 그려낸 시이다. 두 시에서 늘 떠나는 자인 우리는 남는 자들의 모습에 마음이 저린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치러지는 초상이 서울내기들에겐(떠나는 자) 치러야 할, 조금은 귀찮은 ‘일’이지만 할머니, 아버지로 상정되는 전 세대들과 함께 호흡을 나누고, 삶을 살아온 화자와 화자의 어머니에게 두고두고 전해오는 슬픔이며 문득 가슴을 칠 쓸쓸함을 남긴다(‘우리 어렸을 적 할머니와 화로 곁에 모여앉아 놀았던 벽 무너진 쇠죽방을 쳐다보며 나는 쓸쓸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손주 하나가 소주병에 덜 핀 진달래 몇송이를 꽂아 할머님 사진 앞에 놓고 있었습니다.’(「섬진강24」)). 농촌에는 죽음의 흔적만 자욱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어머님의 통곡처럼 가슴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들, 전 세대의 죽음이 쓸쓸함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이 겨레가 생긴 이래/의인들이 목숨을 던져/나라를 지킬 때/아버님들은 이 땅의 논밭에서/곡식으로 나라를 지키며/의롭게 싸우셨습니다./아버지,/이 땅의 의로운 이들의 무덤은/아버님의 무덤처럼/아직 이름 없이 남아 /이 땅을 이땅으로 지키십니다.’ 이렇듯 그들이 살아왔던 자세는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서 남은 자들을 살려내기도 한다.

그렇게 힘을 내어보지만 그들은 이제 일년 농사를 지어봐야 빚 탕감 하는 것에서 끝이 나고 남는 것도 없다. 뿌리면 뿌리는 대로, 자신이 노동을 한 만큼 돌아오던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일년 농사를 짓기 위해 빚을 져야하고 그러한 일은 매년 반복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라는 안보와 경제를 이유로 민중들에게 특히 농민들에게 내핍을 강조한다. 시「풀피리」에서는 남한 땅의 권력자가 ‘군수’로 등장한다. 기름 낀 얼굴로 자신도 농민의 자식이라며 벼 한번 베고 땀을 흘리는 ‘군수’의 모습, 그러면서 뼈 빠지게 고생하는 농민, 저보다 더 나이 드신 어른들을 세워두고 소비 절약하고 근면 검소 하라는 ‘군수’의 모습에 읽는 이가 분노가 치미는 이유는 농민들의 분노가 그대로 이 시에서 전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농촌을 잊어버리고 저 잘났다고 나불대는 도시에 있는 배웠다는 것들은 권력과 돈에 미쳐 가는 모습. 농촌의 사정이 어떤지도 모르고 ‘평화롭다’며 흥취에 겨운 사람들을 향한 분노는 시집 ꡔ맑은 날ꡕ에서 거세게 흐른다.

거세면서도 넉넉한 것이 땅인가? 「풀피리」에서 ‘군수’의 모습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그래도 심은 대로 나는 땅만 보면 좋다. 땅을 보며 ‘우리가 언제/너그 믿고 살았드냐/심은 대로 다 거두는/저 땅 믿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이러한 농민들을 보며 시인 김용택은 자신은 결코 땅에서 멀어지는 배운자들이 되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자세는 앞 시집 ꡔ섬진강ꡕ에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는 바로 땅을 보며 살아온 사람들이 그에게 전해준 자세일 것이다.

죽음과 분노가 가득한 이 시집을 시인은 왜 ‘맑은 날’이라고 이름 붙인 것인가? 누군가 평화롭게 보인다고 말하는 그 날은 농민에게는 너무도 맑아 텅 빈 농촌을 환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고, 그리고 떠나간 자들이 살다간 모판 같은 맑은 날을 생각나게 하는 서러운 맑은 날이며,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없어도 서로 평등한 사람들이 다시금 뿌린 대로 거두며 살아갈 그 맑은 날을 기다리는 자세로 맑은 날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곡식 익어가는 저 들녘이 너무도 눈부셔 서러운 시인의 마음이 찰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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