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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먼 곳을 찾아서
시인이 근대가 상실한 것을 치유하기 위해 찾아가는 자기 동일성의 세계는 어디일까? 여러 평자들의 글에 나타나는 바로, 그것은 장석남이 유년시절을 보낸 德積島 덕적도는 장석남 시인의 육체적 고향인 동시에 정신적 원체험의 공간이다. 그 곳은 「德積島 詩」에서도 나왔듯이 인천에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소야도가 문갑도로 문갑도가 다시 굴업도로’ 40여 개의 작은 섬들을 이루고 있는 덕적군도의 주섬, 덕적도이다. 그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살면서 저물녘의 풍경을 바라보며 시심을 키웠다.(하상일, 위의 책.)
다.
하상일은 ‘덕적도가, 장석남의 유년세계가 삶과 죽음의 우주적 질서 속에서 고통, 슬픔을 이겨내고 비로소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 환하게 열리는, 서정적 풍경이 한 편의 영화 속 아름다운 배경처럼 흐르는 곳’ (하상일, 위의 책.)이라고 말하고 있고, 고봉준은 그의 유년 세계가 타자가 틈입할 수 없는 완전한 자기동일성으로 구축된 공간 (고봉준, 위의 책.)이라고 밝힌다.
물론 그의 시에서 덕적도와 유년세계는 자연과 조화로운 삶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온전한 세상은 아니다.

밥을 먹을 때 나는 자주
밥 냄새 끝까지 달아나 있다

어느 미래에 나는 배고프지 않은 기억 밑으로
수저를 던질 것인가

나는 조용히 수저를 놓고 그들과 함께
몸 비틀며 반짝일 것이다
-「밥을 먹으며」
우리집 굴뚝 위 연기는
우리집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고 싶어했지
그 연기를 나는
너무 많이 보았다
-「배호1」

그의 유년세계는 김수이가 언급했듯이 현재에도 여전히 삶의 시장기( 김수이, 「견딤과 그 이후」, 『文藝中央』, 21호.
「밥을 먹으며」이 외에도 먹는 모습이나, 먹는 이야기가 그의 시에서 많이 등장한다. ‘쌀 씻어 안치는 소리’(「새떼들에게로의 망명」),「생선구이 백반」,「감자를 먹는 노인」,‘여의도 분식집에서 저녁밥을 먹고’(「저녁의 우울」),「초저녁 ‘밥별’이라는 별」등이 이에 속한다. )를 느끼게 하는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배고픔을 던져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바람은 ‘우리집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고 싶어했지’라는 연기의 행로로 나타나기도 한다. 배고픔의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또한 동시적으로 존재했던 곳이 덕적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장석남이 그리고 있는 자아동일성의 세계는 덕적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 덕적도에서 경험한 아궁이와 불, 어머니로 연결되는 어떤 세계다. 덕적도가 아닌 그 세계들을 그는 ‘먼 곳’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다시 기타를 치면 자꾸
먼 세상이 울린다
-「歌1」부분

내가 그믐이니 만월이여……먼 곳이여!
-「내가 그믐이니」부분
나는 안 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진흙별에서」부분

이 먼 곳은 진흙별이거나, 나와 당신이 웃고 만나 순한 돌멩이 같은 아기를 낳고, 순전한 아이가 꽃을 피우면 마을 사람들은 온전하게 마음이 환하여 잠을 못자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부풀고 부족함 없이 마음 가득 차는(「그리운 시냇가」) 공간인 ‘그리운 시냇가’일 것이다.
이러한 순전한 공간을 동일성의 세계로 상상할 수 있는 그의 원체험의 공간인 덕적도, 그 ‘별의 감옥’을 이종환은 자신 역시 한 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종환, 「부재의 시간들이 걸려 있는 시편들」, 『현대시세계』, 14호.
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런 원체험의 공간조차 가지지 못한 필자로서는 별의 감옥을 갖은 자들의 행복을 훔쳐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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