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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볶이 :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 김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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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14
- : 1,641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지은이 김겨울
찍은날 2023년 6월 7일
펴낸날 2023년 6월 14일 1판 1쇄
펴낸곳 세미콜론
남편을 11년째 알아가고 있다. 놀랍게도 나는 그와 떡볶이를 한 번만 먹어보았다. 그것도 딸을 임신하고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다고 다정이(태명)가 난리를 쳐. 꼭 그렇게 거절해야겠어?”라고 애원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유명 빵집 앞에 줄지어 있는 떡볶이 포장마차 집에 가서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위생적이지 않고 거기까지 가서 먹을 맛은 아닐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금도 성격이 하해같지 않은 나지만, 그때는 뾰족하기가 바늘 끝? 아니, 늘 폭발 대기 중엔 활화산 같아서 이런 간단한 거절에도 견디지 못하고 울어버리곤 했다. 울고 싶지 않으면 고성을 지르며 화를 냈다. 그래서일 것이다. 남편이 정직한 방법으로-떡, 어묵, 대파, 고추장, 간장, 설탕 등을 섞어- 떡볶이를 해주었다. 나는 부른 배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떡볶이를 먹었다. 남편은 거의 먹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은 왜 떡볶이를 싫어할까? 남편은 그게 한 끼 식사로는 약간 부족한 것 같으면서, 간식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단지 그런 이유로 싫어한다고? 원래 떡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오후 3시 방과후에 어울리는 음식. 남편의 반박을 들으며 S와 M, 셋이 K중학교 정문을 나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도착하는 S의 이층집까지 가는 데에 3시간이 걸렸던 날을 생각한다. 팬티 스타킹이 보편적이지 않을 때였다. 끔찍한 하얀 스타킹이 줄줄 내려갈 때마다 10원 짜리 동전을 허벅지와 스타킹 윗부분 사이에 넣어보았다. 그래도 조금 걸으면 줄줄 흘렀다. S의 다리를 보고 배꼽을 잡고 깔깔 웃는다. 우유를 부어도 모를 것 같은 회색 치마가 골반 때문인지 자꾸 돌아간다. 나의 치마 꼴을 보고 S,M이 침까지 튀기며 웃는다. 스타킹 올이 자꾸 풀린다. ‘쪽팔려, 쪽팔려’를 연발하며 올 나간 종아리를 가리고 있으면 남학생들이 지나간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반대 편만 의식하고 있던 우리 셋은 스스로 바보 같다고 푸지게 웃는다. 그렇게 웃다보면 배가 고파진다. S의 집에 떡을 사 들고 간다. 팬에 물을 자작 자작 붓고 고추장, 간장, 설탕 따위 넣고 떡을 씻는다. 대충 끓으면 정신없이 먹으며 또 강타의 열혈 팬이었던 S의 강타 자랑을 한바탕 듣고 온다. 아, 그래? 토니는 미국에서 살다 왔니? 오…그래도 강타가 제일 낫네. 네 말대로. 그런데 어쩌지? 나는 김현철이 좋은데. 그럼 예쁘장한 S가 껄껄 웃으며 말한다. “미쳤나봐!” 흠…그때의 친구는 다 사라지고 지금은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은데, 친해지면 도원결의 후 먹는 술처럼 입에 들여야 하는 떡볶이를 아직 함께 먹지 못하고 있다. 몹시 안타깝다.
하지만 그래서 내게는 떡볶이를 먹는 것이 매우 특별한 일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은 후, 떡볶이를 먹는다는 것은 비밀스런 제의가 되었달까. 남편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고, 두 아이는 매운 것을 먹지 못하니 어디서, 어느 때나 먹을 수 있는 친근한 음식 리스트에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비밀스런 제의를, 이 책을 다 읽은 월요일 오후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남매가 학교와 태권도 학원을 거쳐 수영까지 마치고 샤워를 완료하는 데다 학원차가 픽업까지 해주는 유일한 날! 나는 무려 18시까지 자유인 것이다. 김겨울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 ‘하지만 내 마음 속 떡볶이는 판 떡볶이인 것을….’(119쪽) 내 마음도 그렇다네! 나는 판떡볶이 맛을 찾아다니기 위해 우리 동네 일대를 걸어서 다녀본다. 밀키트 상점도 간다. 요새는 마라맛 떡볶이가 유행인가보다. 마라탕후루가 대세라더니 떡볶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 속 떡볶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300원 내고 6개의 가래떡을 받았던 아주머니 가게의 그 판 떡볶이다. 밀떡은 안 된다. 쫀득쪼온득한 가래떡, 적당한 국물, 떡에 스며들 만큼의 양념, 몇 입 먹고 물을 마실 만큼의 매운 맛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게 은근히 갖추기 어려워졌나보다. 현대사회가 미친듯이 발전하는데 이 맛은 아무도 밀키트로 재현해주지 않고 있다. 찾다가 지쳐 나는 할매 떡볶이 집을 갔다. 놀랍게도 밀떡과 가래떡 중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맵기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워 보였다. 그러나 할 수 없지. 스트레스 천국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정도 맵기로 맵다고 할 수는 없어보인다. 마라맛 떡볶이만 파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좋다.
김겨울 작가는 ‘떡볶이를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집’(121쪽)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두 아이의 엄마까지 된 나는 생각이 다르다. 왜? 왜? 음식점 가서 굳이 사와? 그 음식값에 설거지와 뒤처리 비용이 다 포함되어 있는데? 그래서 나는 배달은 한 그릇으로만 오는 초밥만 시켜먹고(돈 없는데 잘났다.) 포장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먹고 일어나기만 하면 다 치워주는 그 매력을 난 뿌리칠 수 없다. 김겨울 작가처럼 나도 ‘혼자 먹는 것이 괜찮다 못해 혼자 먹는 것을 즐기는 적극적 혼밥파’(121쪽)이기까지 하다. 왜 이리 되었을까? 김겨울 작가처럼 미국 교환연수를 다녀와서가 아니다. 그저 지나가던 사람이 뒤돌아볼 만큼 막 되게 인형처럼 생기지 않았고, 남편도 인정할 만큼 여우 파는 아니라서다. 비로소 맛집을 찾아다닐 수 있을 만큼 돈을 벌 때 다른 친구들은 연애로 꽁냥꽁냥 중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그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김겨울 작가 말대로 ‘이유가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솔로라서 편한데 주변에서 불편하게 해서 맛집 찾기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당시를 떠올려 보기로 했다. 애들한테 “반찬 괜찮니? 당근도 다 먹어.”라고 할 필요 없고,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통 말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밥은 먹고 와?”라고 물을 필요 없는, 그의 야근일. 나는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의 매콤달달함, 떡의 쫀뜩함, 양념에 푹 절은 튀김옷의 부드러움을 만끽하기로 한다.
‘내가 떡볶이와 함께 먹는 음료는 차가운 탄산수나 두유 정도, 기분을 내고 싶은 말에는 맥주나 와인 정도. 시원한 맥주야 두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와인이 의외로 떡볶이와 잘 어울리는 주종이다. 가벼운 스파클링 레드 와인은 떡볶이의 무거운 맛을 중화하며 입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고, 푸릇한 향이 있는 화이트 와인도 떡볶이와 붙어서 지지 않는 힘이 있어 잘 어울린다.’(147쪽) 그래? 그렇다면 나는 맥주로 정하겠다. 147쪽에 작가가 쓴 대로 하려고 싫어하는 포장을 했다. 냉장고를 연다. 봄날 지인들소풍에 동참했다가 남은 맥주를 끌어안고 왔는데 아직도 3캔이 남았다. 와인은 남편이 따줘야 먹는 나로서는 남편도 없는데 굳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면서 와인을 먹고 싶지는 않다. 나는 땅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맥주 한 캔을 딴다. 가래떡을 잘라 입에 넣는다. 와…패기롭게 떡을 먹었군…동네 떡볶이 집이 이런 매운 맛을 낸다고? 이게 보통 사람들이 먹는 순한 맛이라고? 믿을 수 없다.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아니, 딸의 이유식기였던 8년 전부터 매운 맛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은 습관 때문에 양념이 더 맵게 느껴질 거야. 나는 중학교 과학 시간에 ‘나는 우성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까요?’를 알아보기 위해 했던 혀 말기를 하면서…중학교 때는 안 됐던 것이 요새는 되던데…어쨌든 혀를 말고 그 사이로 숨을 내쉬면서 떡과 튀김옷을 번갈아가며 입에 넣었다. 달달하니 맛있네. 나는 맥주를 꿀꺽꿀꺽 넘기며 생각한다. 튀김옷을 다 먹고 계란을 반토막 내서 노른자를 양념에 비벼 한 숟갈 먹는다. 그 다음 결연하게 다시 떡을 먹는다. 맥주를 삼킨다. 호호…떡을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래떡 하나가 남았다. 나는 물끄러미 보다가 남편이 삶아놓은 계란을 하나 가져와서 깠다. 그 계란을 반토막 내서 입에 한 번씩 넣고 맥주를 꼴깍꼴깍 넘긴다. 가래떡 안녕.
김겨울 작가도 172쪽부터 얘기하는 것처럼, 떡볶이도 먹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게 있다. ‘소화가 잘 안 된다든지 좀 찌뿌둥하다든지 하는 느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더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었다.’(173쪽) 이것을 두려워하니 호승심으로 한 접시를 다 먹는 패기를 부릴 수가 없게 된다. 가래떡을 음쓰봉투에 넣고 진공냉장고에 밀폐시킨다. 노른자를 양념에 더 비벼먹을 수 있지만 참기로 한다. 그냥 노른자를 입에 쏙 넣고 계란 껍질을 조심스럽게 버린다. 튀김옷 나머지는 휴지로 모아 버린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남은 떡볶이는 몇 번일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맥주도 1/3이나 남겼지만 개수대에 버리며 안녕을 고한다. 내 상태를 잘 살피고 제일 즐거운 시간을 즐긴 뒤 행복하게 남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 것.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 떡볶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변치않을 마음 속 1순위 음식이고, 배고플 때마다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다. 그래서 이렇게 고요의 시간, 나만의 시간이 날 때 떡볶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나는 떡볶이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냥 이대로 신나게 그 자리에 있어주었으면, 지금처럼 계속 몸을 바꾸며 새로웠으면, 누구에게나 추억의 맛으로 여전했으면, 오랫동안 그렇게 있어준다면 충분하다. 차라리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떡볶이 이모지가 하루빨리 등록되어서 친구에게 이모지 하나로 “떡볶이 고?”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것이다.(184쪽)
나는 진짜 바라는 게 없다. 이모지도 바라지 않는다. 며칠 뒤면 나는 또 월요일에 나와 함께 할 떡볶이 집을 티맵에서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식당과 밀키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 여정은 다소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는다. 나도 손맛도 제법 갖추고 있는데다(요리책 봤다, 싱크대 봤다 이러는 거 졸업한 듯합니다. 으쓱-)없으면 계속 탐험하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닌가? 앞으로 오랫동안 내 취향에 맞는 떡볶이를 찾을 생각만 하면 둘째가 레고 상자를 열 떄만큼 나는 펄쩍 뛰면서 환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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