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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imout님의 서재
  • 삶의 발명
  • 정혜윤
  • 15,300원 (10%850)
  • 2023-10-25
  • : 9,502
2023년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 1주기다. 백화점이 붕괴되지도, 다리가 끊긴 것도 아닌데 일상을 살던 시민들이 이태원 길에서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용산구청과 용산 경찰서는 질서 유지와 치안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며 1년을 때워왔다. 한 사람도 처벌 받지 않고 1년이 흘렀다. 믿을 수 없게도 용산구청장과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한 1심 결과는 올해에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전부 퇴장한 가운데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내년 2월에나 표결에 부쳐질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에 명시된 조사 주체의 권한이라는 것도 대폭 축소되었다. 조사에 불응하는 자에게는 고작 벌금형 정도로 수정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놀다가 죽은 사람까지 애도해야 하냐.”라며 굳이 현수막까지 서울시청 옆 상가 가로수에 걸고 유족을 조롱하고 있다. (그걸 본 내 눈을 빨리 씻어내지 못해 안타까웠다.) 단지 참사 현장에 있지 않았다거나 빨리 빠져나왔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 살아있을 뿐. 그런데 유족이 된 평범한 가족에게 막말이 돌아가고 있다.

이뿐인가. 자고 일어나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무려 21세기에 재래식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러시아가 일으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두 강국의 냉전 시대를 연장한 듯한 기시감을 일으킨다. 지치지 않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영토에 정착촌을 계속 만들어왔던 이스라엘은 확전을 선언하며 미국의 지원까지 받고 있다. 편안히 레트로 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지금, 나는 단지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피한 것뿐이다. 지구촌에서 오늘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그저 운이 좋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근처에 도사린 죽음이, 혐오가 자신과 아예 상관없는 것처럼 죽음과 혐오의 대상자들을 끊임없이 조롱한다. ‘당할 만한’ 이유를 찾고 ‘왜 거기 있었는지’를 묻는다. 생명과 인격의 상실에 대해 슬퍼하지 않는 것이 쿨한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정혜윤이 신작 <<삶의 발명>>(초판 1쇄, 2023년 10월 23일, 위고 출판사)을 펴냈다. 내가 사랑하는 그의 전작처럼, 그는 비극만이 넘치는 지구에서 희망과 마음에 아로새길 별빛을 쓰고 있다. 그가 인간과 이 지구에 거는 희망, 그가 지구로부터 받았던 위안과 기쁨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읽을 때마다 ‘이것이 진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를 질문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1944년 일본 정부가 동남아시아에 억류 중인 포로들을 감시하는 관리원들을 조선인으로 뽑아 노구치 부대 소속으로 콰이 강의 다리 등에 보낸다. 그들에게 포로 존중 의무가 담긴 제네바 협약을 알려줬을 리 없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냅다 사람의 뺨부터 갈기는 법을 배웠다. 그들 역시 죽지 않을 만큼 모이 수준의 식사를 하며 생활했다. 1945년 8월, 그들은 독립한 조국에 버젓이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범 재판이었다. 삭발되고 온 몸이 벗겨진 전신 사진은 포로들에게 보내졌고 그들의 회상에 따라 포로감시원들의 생사가 결정되었다.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해 포로감시원으로 콰이강의 다리에서 포로들을 대했던 조문상은 싱가포르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가 남긴 유서의 일부를 정혜윤은 집중해서 보여준다.

역시 정말로 죽고 싶지 않다. 이런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말은 본심이 아니었다. 역시 이 세상이 그립다.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면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싶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다. 26년이 거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유서는 조문상을 비롯한 전범 3400여 명의 명예를 위해 전범 재판과 여러 기자 회견 등을 다니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었던 이학래 씨가 갖고 있었다. 조문상, 감형되어 살아남은 이학래는 자신이 전범의 수치심만 안고 사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자신이 왜 감옥에 왔는지를 자문했다. 살아남은 이학래는 자신의 살아남음을 그저 수치나 행운으로 여기지 않았다. 조문상의 유서를 품고 거리에서 보는 일본인들에게 말을 걸며 도의심을 깨웠다. 조문상이 자신의 죽음이 어디서 왔는지를 통렬하게 성찰했다면 이학래는 자신이 살아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외면하지 않았다. 정혜윤은 자신의 역사를 남들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써내려가는 용감한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죽음 앞에서야 정직해지는 인간, 죽을 때에야 알게 되는 소중한 것을 지금 생각해 보자고 나를 자꾸 흔들었다. 그들을 타자로 보지 말자고, 그 시대에 살았고 그 공간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나를 이해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진정 자신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것이 지혜와 사상이라고 준엄하게 말하고 있었다.

정혜윤 피디는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여기서도 한 보따리 풀어놓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미얀마의 탄바우자야트에 묻힌 상자 이야기다. 콰이 강의 다리를 달려 어린아이를 환호하게 했던 그 기차에는 일본의 패망 직후 엄청난 상자들이 실려 미얀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보물이라고 전해졌다. 미얀마인들은 그 상자만 파묻고 사라진 일본인들을 보며 일확천금을 꿈꾸었다. 그러나 꿈을 품고 산으로 들어간 미얀마인들은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심심하다고? 책을 보라. 정혜윤 피디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자연이 아니고 돈이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은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윤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이야기속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일부 인간만이 남는다. (중략)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유? 하나의 이야기밖에 모른다면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가 다른 삶이 가능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휴직을 하고 사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을 펼쳤다. 여성-장애인-흑인-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샌드위치 소스를 젓다가 기계에 끼어 죽은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 뉴욕 할렘가에서 어머니와 살면서 반목했다가 애정을 느끼기도 하는 여성의 이야기, 미국 사회 보장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몽 족의 방식을 고수하며 장애아를 키웠던 한 가족의 이야기, 이태원 참사 때 딸을 잃어 딸이 묻힌 묘에 한 달 안에 합장돼서 딸을 껴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이야기 등을 읽었다. 나는 매일 커피를 마시고 쿠키를 한 입 물 때마다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이나마 떠올리게 된다.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일들 -주력 부서 소속이 아니라고 후배들에게 (속칭) 까이던 경험-이 너무 가소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혜윤 피디는 내게 ‘나-나-나-나’로 이어지는 사슬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직장이나 집, 흔한 모임에서 나는 사람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언급하지 않는다. 냉소하는 것이 똘똘해 보이기 때문이다. 냉소가 희망보다는 현실적으로 보이기에, ‘남을 생각하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일’은 이윤이 따르지 않으므로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가족을 의지하고 각자 도생을 위해 재테크에 헌신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혜윤은 질색한다. ‘미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 생각이고 꿈이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과 꿈과 생각대로 만들어지고, 상상하고 꿈꾸지 않으면 영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믿지 않으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이야기꾼의 능력이다.’(219쪽)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현명하다고 믿는 지금의 사고 결과, 메인 서사를 의심하라고 한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구성하려면 다르게 생각하라고 한다.

나는 가소로운 절망으로부터 벗어난다. 내가 하는 일이 미래를 구성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세상이 얼마나 걍팍한지 강조하는 일을 멈추기로 한다. 성공해서 경쟁자를 따돌려 좋은 직장을 얻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꾸리자는 서사를 거부하기로 한다. 지금부터는 동물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연히 어떤 곳, 어느 시간 대에 있었기에 학살과 죽음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조롱하는 목소리를 차단하겠다. 나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생명이라는 연대성을 붙들고 지구에 죽음 대신 탄생을, 성공 대신 성장을, 인스타 그램 대신 책을 말하는 꿈을 꿀 것이다. 아픔을 보더라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똑똑해 보이기 위해 쉽게 냉소하지 않을 테다. 당장 피우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씨앗을 땅에 뿌리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다만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작은 씨앗을 땅에 뿌리는 것이다. 사소한 방식으로나마 지구에 희망을 길어올렸는지, 하루를 그렇게 살았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나는 내가 몹시 좋아하는 이야기의 일부에 편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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