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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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imout님의 서재
  • 눈감지 마라
  • 이기호
  • 13,500원 (10%750)
  • 2022-09-25
  • : 1,715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용도 제 몫의 이삿짐을 들고 일어 섰다. 정용은 그나마 낡고 오래된 캐리어가 있어서 한결 짐 싸기가 수월했지만 문제는 컴퓨터였다. 본체와 모니터를 들고 캐리어까지 끌자니 손이 모자랐다. 정용은 진만에게 모니터라도 부탁할까 싶어 힐끔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그는 이미 두 손에 다른 것을 들고 있었다.(같은 책 20쪽)

서로를 도운다는 것이 사치인 지방대 졸업 청년 진만과 정용의 '보증금 없는 월셋방 살이' 이야기라고 줄여 말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끝내기에는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세계가 너무 거대하고 슬프다. 나는 이 책을 국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가 소장해야 하기 때문에 서점에서 다시 샀다. 이들의 삶이 너무 고달프다. 그런데 왜 고달픔의 연속일까. 다시 읽으니 20쪽이 다시 읽힌다. 가족(이나 유사 가족)에게 짐을 덜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만 그들 역시 두 손이 꽉 찬 상태다. 자동차를 이용하거나 돈을 들여 택배 차량을 이용하면 두 손이 남고 그들은 걷지 않아도 된다. 여유가 생겼으므로 그들은 초코파이에 초라도 꽂고 입주를 축하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보증금이 없는 광역시 외곽의 월셋방을 선택했다. 셋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짐은 두 손에 든다. 월셋방까지의 이사가 그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한 눈에 보여주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기대는 순간, 다른 사람이 돈 벌 힘, 버티는 인내심을 빨아 먹게 된다. 사소한 부탁이 상대를 무너뜨리는 어마무시한 무기가 된다. 컴퓨터 하나라도 더 가져온 정용에게 진만은 아주 버겁고 신경질을 유발하는 존재가 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용은 진만을 거의 부축하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고 인근 종합병원으로 갔다. 새벽 무렵부터 진만이 계속 구토를 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도 다시 펄펄 끓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또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중략) 아이 씨, 이래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건데.(같은 책 63쪽)

진만은 쉽게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자주 아프다. 원가족은 초단기 알바생처럼 경비 일을 하며 할아버지를 부양하는 아버지뿐이라 여윳돈을 가져올 처지도 못 된다. 그런데 정전 되니까 호빵 먹고 싶지 않냐며(71쪽) 정용이 듣기에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정용은 생각했지만 뜬금없다고 무시하는 태도가 맥락에서 보인다. 홀로 쇼핑 카트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부축하고 트럭 짐칸에 짐을 실어주는 착한 청년, 점원들을 못 나가게 하려는지 어깨에 귀신이 보인다고 말하는 이상한 사장에 대한 하소연도 들어주는 배려심 넘치는 청년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정용의 입장에 서서 진만이 이렇게 못마땅해지는 걸까. 소설을 이렇게 읽어도 되는 걸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뚝배기를 바로바로 홀로 내보내야 하는데 지체가 생기니 지배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어쩔 수 없이 진만이 아주머니 일까지 도울 수밖에 없었따. 아니, 아주머니 왜 이런 일을 하세요? 아무리 일당이 좋아도 그렇죠. 이러다가 아주머니 쓰러져요. 진만은 그 말을 하고 싶었으나, 차마 꺼낼 순 없없다. 아주머니가 이마에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같은 책 166쪽)

진만은 정용 없이는 홀로 서기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정용이 매달 10만원 이상 더 월세를 내고 신라면 2+1을 구입하거나 로션을 채워 넣으니 말이다. 그런데 진만은 통장에 3만원도 없으면서 58만원 짜리 롱 패딩코트가 20만원 할인되었다며 그것을 너무 입고 싶다며 정용에게 호소를 한다. 트럭 사고 목격자의 증언자가 되겠다고 나서기도 하고 정용 컴퓨터의 전원을 제대로 끄지 않는다. 서술자는 한 번도 정용의 심정을 대변하지 않는다. 현명하게도 진만이 일하는 삼계탕집 아주머니를 통해 각자도생이 되지 않으니 성질이 나는 진만을 보여주며 정용이 쌓아왔던 울화를 보여준다. '아들같은 동료에게 고마워서' 포카리 스웨트를 건네는 아주머니에게 되려 속으로 원망하는 진만, '왜 고생시키느냐고요.'라며 별 감흥이 없는 그는, 아주머니가 사라지자 몸이 편해졌다는 생각만 자꾸 하려고 한다. 아마 진만은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용이 진만을 생각할 때 그랬던 것처럼. 보증금이 없던 월셋방이 반전셋방이 되면서 500만원을 다 낸 정용은 울화를 한 마디로 진만에게 던져버린다.

"이거 네가 다 먹었어?"
정용이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어, 미안... 내가 다시 사다놓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정용의 입에서 툭, 그 말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에이, 씨발 진짜...무슨 거지 새끼도 아니고."(같은 책 268쪽)

화장실에서 나온 정용은 짐을 다 챙겨 가출하는 진만을 본다. 잡지 않는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으나 믿음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던 진만과 정용, 그러나 이력서에 들어갈 버젓한 한 줄이 아니었을 뿐이었던 그들의 노동은 언제나 지치고 고단했다. 함께 사는 사람을 챙기고, 불의를 보면 시민으로서 행동하기에 그들은 뭐든지 모자랐다. 집, 잠, 휴식, 여행...이런 것들. 두 사람이 각자도생하느라 눈감고 있었던 현실은 아르바이트 여자 청년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또한 트럭 기사와 할머니의 생계를 가로막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둘은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린 동물을 학대하는 동물원을 보아도 대화를 하지 않는다. 울분과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이 가난에 고여버리는 바람에, 둘은 함께 있어도 각자의 잠자리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묶어버린다. 결국 사장에게 가불받아 아무 말도 못한 진만은 면허 없이 오토바이를 묵묵히 몰고 만다.

희망 없음을 정직하게 밀고 나간 이 소설은 이상하게도 덮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각 장이 완결성을 지닌 손바닥 소설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이 두 청년에게 누가 공평을 말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니 졸음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자란 청년이지만 서울에서 대학 공부했다고 스스로를 전혀 지방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다. 이 뻔뻔함에 대해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었을 때 우연히 대학 신입생이 되었던 행운,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정규직에 취업된 행운...이 모든 것에 대해 두 청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우리도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지 덕으로 이 모든 것이 골치없이 풀어질 수 있었다면 이 세상, 우리한테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의 아르바이트는 이력서에 쓰이고, 왜 나의 아르바이트는 숨겨져야 합니까?" 행운 하나가 불러오는 극명히 다른 두 세계, 내가 몰랐던 세계에서 계속 사회가 외면하는 시간을 쌓아가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의 삶을 '공평'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가. 어두운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정용이 부디 덜 아파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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