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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컴플렉스님의 서재
  • 내면일기
  • 소피 퓌자스.니콜라 말레
  • 22,500원 (10%1,250)
  • 2025-04-30
  • : 1,349
처음 『내면일기』를 펼쳤을 때, 솔직히 나는 일기장에 담긴 타인의 삶이 얼마나 내게 와닿을 수 있을지 의심했다. 일기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장르이며, 누군가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고 때로는 낯선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소피 퓌자스와 니콜라 말레가 엮은 이 책은 나의 의심을 천천히 허물며 어느새 친숙한 마음으로 읽게 했다.

이 책은 조르주 상드, 루이스 캐럴, 외젠 들라크루아, 캐서린 맨스필드, 조지 오웰, 조르주 페렉을 포함한 87명의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실제 친필 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독자들을 각자의 내밀한 시간 속으로 초대한다. 특히 마리 퀴리의 일기에서 발견한 눈물 자국 앞에서 나는 글이란 단지 문자의 조합을 넘어 물리적이고도 감정적인 기록임을 새삼 깨달았다. 필체의 떨림과 잉크의 번짐, 삭제된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친필 원고 이미지는 마치 낡은 가죽 커버의 오래된 다이어리를 실제로 손에 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내가 많은 챕터 중에서 ‘일상 예찬’을 집중적으로 읽고 의미 있게 느낀 이유는 일상이야말로 모든 창작의 출발점이며, 우리가 가장 쉽게 지나쳐 버리는 평범함 속에 가장 진실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 소피 퓌자스는 “일기는 일시 정지, 괄호, 멈춤이다. 자기 시간을 고립시키고 망각에 저항하며 기록하면서 싸우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바로 ‘일상 예찬’ 챕터를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었다.

조르주 상드의 일기는 나를 사로잡은 첫 번째 기록이었다. 그녀의 문장은 과장이나 꾸밈이 없었고, 차라리 무심할 정도로 담백했다. 평온한 하루의 산책이나 소박한 식사 장면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사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루이스 캐럴의 일기는 반대로 친숙한 일상 속에서 기묘한 상상력을 펼치는 독특한 방식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사소한 일상조차도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했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일기는 내게 그림의 또 다른 형태를 발견하게 했다. 그는 색과 빛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춤추는지 세심하게 기록하며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행위임을 드러냈다. 그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주변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

캐서린 맨스필드의 일기는 감정의 미묘한 층위를 담담히 기록하면서 내면의 복잡함을 드러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관찰하듯 기록한 그녀의 글은, 나에게도 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조지 오웰의 날카로운 일상 기록은 평범함 속에서 시대적 진실을 드러내며, 일상과 역사의 불가분성을 깨닫게 했다.

조르주 페렉의 목록과 반복의 글쓰기는 일상의 세부를 끈질기게 기록함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가 보여준 일상의 집요한 기록 행위는 나 역시 나의 평범한 하루를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아니 에르노와의 대화는 일기 쓰기의 내밀한 본질과 그 글쓰기가 작품 창작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그녀가 일기를 창작의 원천으로 활용한다고 밝히는 장면에서, 나의 평범한 일상 역시 글을 통해 특별한 의미와 가치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일기는 그저 기록의 행위를 넘어,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자기만의 시간을 만드는 섬세한 저항일수도, 단순히 경험을 정리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간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면일기』는 궁극적으로 일기라는 장르가 단순한 개인적 기록을 넘어 삶의 진실한 단면을 포착하고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기록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증명한다. 책을 덮은 뒤에도 나는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으며, 모든 순간이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다시 품게 되었다. 『내면일기』는 단지 읽히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가 각자의 삶과 내면에 깊숙이 녹아듦을 기대하게 하는- 특별한 문학적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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